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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끄트머리에서 성장의 기회를 잡다.

인생에 위기란 없다. 변화가 있을 뿐...

by 디제이K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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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간 혼자 지낼 짐을 싸서 일곱 살, 다섯 살 아이들과 아내를 뒤에 남겨 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 뉴델리 겨울밤은 안개가 짙게 낀다. 

공항에 도착해서 1미터 앞도 보기 힘든 시계를 뚫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안개처럼 보이만 매캐한 냄새를 품은 스모그다.

인도 뉴델리의 스모그는 지금도 악명이 높지만 당시에는 더욱 심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아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짙은 스모그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더 무거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여러 해 해외 출장을 다녔지만 길어야 일주 또는 열흘 정도였지, 몇 달을 계획하고 나선 길은 처음이었다.

도착한 날부터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들어 있었다.

출장 임무를 서둘러 마치고 돌아가 소위 선진국 주재 근무 기회를 만들어 가족과 같이 나가겠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출장 업무를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마치고 돌아가야 했다.


가족을 남겨두고 떠났으니, 육아는 오로지 아내의 몫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아빠를 찾으며 운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한편으로 마음이 짠하고, 한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든든했다.

나를 찾고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 의미이기도 했으며 용기를 내어 현실의 힘든 장벽을 넘을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가족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었고, 아이들이 나에게 삶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아빠에게 벌써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지내는 몇 달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덥다.

거리의 먼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도 직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이 일하기 힘들다.

인도 사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결과가 오리무중이다.


몇 달 동안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현지 과제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는 동안 뇌리 속에는 어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 당초 계획대로 좋은 지역, 더 나은 환경에서 주재 근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신입 사원 때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탈출을 시도하며 해외영업부서로 부서 전배시켜 줄 것을 상사에게 틈날 때마다 어필한 경험이 있다.

그때도 하던 일은 등한시하지 않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하면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리고 원하던 대로 해외영업 부서로 옮겼다. 

원하던 바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

10년 뒤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인도 현지에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본사의 상사에게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의지를 계속 전달했다.

그러나 out of sight, out of mind였다. 

허공에 던지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예정된 3개월 동안 혼자 고군분투했고,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나니, 현지 법인의 쌓인 문제들은 한편으로는 정리가 되었고, 동시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들이 쌓여갔다.

이러다 이 미로 속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0명 넘는 현지 직원들과 쌓여있는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바빠,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3개월 후 본사 상사에게 계획되었던 시간이 지났으니 후임을 보내주면 복귀하겠다고 당초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소귀에 경읽기였다. 마음이 초조해져 갔다.


상사가 나를 달래며 3개월만 더 작업하고 마무리하란다.

조직의 생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래 3개월만 더 고생하고 마무리하자'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출장 일정을 이어나갔다.


추가 3개월을 더 보내는 동안 업무는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본사로 돌아가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6개월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 상사와 마주 앉았다.


내가 인도 업무를 몇 해 담당해 온 터라, 배경과 세부 사항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따라서 새로 누군가를 뽑아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혼자 나가, 어린아이들 육아를 아내에게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어려운 사정임을 전달하며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상사가 제안을 하나 해왔다.

최소 2년 이상은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이들을 국제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포함해서 가족 동반 주재근무를 당근책으로 제시했다.

'어~ 이건 애초 없던 시나리오에 인데~~'란 생각이 들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육아 관련 서적을 사서 읽으며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 적어도 문제없는 부모가 될 수 있는지 공부했다.

첫째가 태어나고 육아, 자녀교육 관련 책을 읽으며,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 부모로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나름 정했다.


첫째, 최고의 사랑

둘째, 최고의 교육환경

셋째, 최고의 솔선수범


이 세 가지를 마음속에 새기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모든 행동을 이 기준에 두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생각과 노력이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무대를 옮기는 결정을 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 모습을 보며, 내가 결심한 것을 제대로 실천했는지 돌아본다.

어느 것은 만족스럽고, 어느 것은 미진한 부분, 후회되는 면이 있다.

다만, 한 가지 스스로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교육환경을 주겠다고 결심한 것은 실천한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을 하더라도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으며, 미련이 남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매우 많다.


회사의 주재근무 제안을 받아 들고 고민했다.

큰 아이가 막 초등학교 입학했고, 아내도 학부모 역할과 같은 반 엄마들 모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터라 섣불리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현지 국제학교가 전 세계에서도 교육환경이 좋기로 이름난 터라,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가 탐났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현지 국제학교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의 세 가지 실천 덕목 중 최고의 교육환경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가 나타났는데, 잡지 않을 수 없었고, 아내는 추후 설득하기로 생각하고 상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3년 뒤 회사 내부에서 나의 위치나 역할에 대한 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설득했다.

내가 혼자 지낸 여섯 달이 너무 힘들었고, 아이의 교육을 위해 좋은 기회라고 설득했다.

설득하는데 몇 달을 보냈고, 그해말 아내가 가족을 데리고 현지로 나와, 힘겹고 긴 여정에 합류했다.


해외 근무를 원했기에 어찌 보면 나의 꿈이 일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기회의 본모습은 아니었다.

예정된 2년을 마칠 무렵 다른 국내 대기업 계열사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 설립한 인도 법인의 신임 법인장을 찾고 있으니 지원의사가 있는지.


직감적으로 이것이 기회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장하는 삶을 위한 기회.

이 제안을 받기 전 2년 동안 혼자 인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느낀 바가 있었다.

인도에서 성공한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제안을 받았지만, 과연 이것이 내가 붙잡아야 할 기회인지 고민했다.

본사로 돌아가 대기업이 주는 상대적 안정성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야전에 남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계속 유지하고, 남다른 경력을 개발해서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경험을 취할 것인지.

새로운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앞으로의 과정은 쉽지 않으리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해동안 인도 사업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들을 겪어봤기 때문에 새로운 포지션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고난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를 내기 위해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생각이,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되었다.

첫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의 기회

둘째, 인도만큼 삶의 내공을 쌓을 좋은 무대가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생각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기회인지 알아차리고 잡는 선구안이 중요하다.

그러한 선구안을 위해 평소 책을 읽고 사색하고 현실에 부단히 적용하면서 습관을 들이고 결과를 통해 반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나만의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기준을 가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기회로 알아보고 잡는 선구안이 길러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가 내 삶의 질과 모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해 살아내면서 여실히 느낀다.

읽고, 생각하고, 사색하고, 숙고하면서, 절치부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삶의 과정임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이직 제안을 받아들이고 절차에 들어갔다.

새로운 회사와 세 번에 걸쳐 면접을 진행했다.

회사 중역을 포함해 전 면접 과정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후로 몇 번 더 이직의 기회가 왔을 때, 이때 첫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직위와 연봉협상을 포함하여 두 달에 걸친 절차를 마치고 현지 법인장으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장기 출장을 나서며, 더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 아닌가 불안했다.

그래서 어서 빨리 탈출하고픈 마음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나니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그것을 잡았다.


주위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현지에서 연봉과 직위를 높여 이직했다.

흥분된 기분으로 척박한 들판에서 새로운 40대 10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반면 기회로 생각했던 상황이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기와 기회는 반복해서 인생에 나타나지만 정작 그것은 변화의 과정일 뿐 우리가 위기, 기회라는 이름표를 붙여 부를 뿐이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반복하면서 성장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삶의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반복이며 순환이다. 과정이다.

그 과정에 중요한 것은 성장을 향해 힘을 잃지 않고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요즘 소위 말하는 '중꺽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중꺽마'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어서 가능했고, 그 사랑의 힘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회를 만나 흥분된 순간을 즐기는 것도 잠시였다.

허니문 피리어드 Honeymoon Period는 달콤했지만 짧았다. 

가족의 사랑과 도전 정신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큰 장벽들이 40대 초반 들판에서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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