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라는 이름의 정체성
1990년대 초반
당시는 대학 졸업식 이전 입사한 회사에 먼저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입사한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일주일 정도 받고, 동기들과 헤어져 각자 배치받은 부서가 있는 사업장으로 흩어졌다.
첫 출근 2월 겨울 어느 날
앞으로 몇 해 동안 사용할 빈 책상과 의자가 내 '자리'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주어졌다.
말끔한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다.
내가 배치받은 부서가 있는 사업장으로 출근한 첫날 기억나는 것은 사무실 장면이나 주변 사람들 모습이 아니라, 그때 그 자리를 마주하면서 내가 했던 생각 한 자락이 아직 아련히 남아있다.
'이 자리를 언젠가는 떠날 때가 오겠지'란 생각.
무슨 뚱딴지 같이 자리를 받은 첫 출근 날 떠날 생각을 하느냐고 힐난을 받을 수 있겠다.
당연히 기쁜 마음도 들었을 것이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기대도 되면서 부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
기대, 흥분, 부담이 뒤섞였을 그때 기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그 생각만은 아직 분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허무하다거나 덧없다는 등의 염세적 생각이 아니라, 매우 덤덤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내가 일하는 '자리'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첫 출근하던 날 그 '자리'가 나에게 '대기업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그렇게 나에게 첫자리가 주어졌다.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자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리'가 30대 마지막해에 주어졌다.
해외 현지에서 법인장 임원으로 이직하면서 새로운 자리가 주어진 그때, 어느 정도의 흥분, 기대 그리고 두려움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등의 여유로운 생각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한국과 현지를 오가며 이직 절차를 진행하고, 현지 업무 인수인계 등 일들을 정리하느라, '언젠가 떠날 거야'라는 등의 여유를 부릴 새가 없었다.
사무실, 직원, 일의 종류, 역할이 달라졌다.
그리고 내 자리의 책상과 의자 크기가 달라졌고,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법인장'이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불려졌다.
자리가 바뀌니 호칭이 달라졌다.
호칭이 바뀌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나름 힘이 생겨 활기차게 일을 해나갔다.
그러나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특히 해외 현지 사업은 난이도가 최상급이어서 신임 법인장이 헤쳐나가기에 벅찬 이슈가 많았다.
법인장으로 이직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현지 직원을 채용하며 조직을 키우고, 현지 법인의 모습을 착착 갖춰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허니문 피리어드가 끝나고 본사로부터 실적 달성의 압박이 들어오는 시기와 겹쳐서, 현지 파트너와 고객이 상황을 비틀기 시작했다. 현지 고객사와 파트너사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그들은 이미 작당하고 덤벼든 것이다.
현지 사업을 같이 하기로 계약한 파트너가, 자기가 계약을 다 먹을 테니 내 이름을 들먹이며 나더러 한국으로 돌아가란다.
현지 파트너가 서면 계약을 무시하며 뻔뻔하게 들이댄다.
이제 막 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직원들을 채용하고 본사에는 거창한 그림을 그려 청사진을 제시하고 보고한 상황인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아이들은 국제학교에 적응해 막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데, 현지 파트너사가 뜬금없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정말 어이가 없지만, 속으로는 '이거 큰일이다!' 싶었다.
계약이 파기되면 법인 존재 이유도 없을뿐더러, 나와 가족의 주재원 체류는 금세 끝날 상황이다.
일 년 만에 내 '자리'가 없어질 판이니 이것은 그야말로 나의 정체성의 위기나 다름없다.
그런 상황에서 본사는 현지 법인장에게 거센 실적 압박을 가해왔다.
본사와 현지, 양쪽에서 압박이 거세게 밀어닥쳤다.
막 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긴 나에게 우군은 없었다.
그렇게 40대 서두를 펼치며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현지 파트너사 사장이 보기에 이제 막 법인장으로 온 나를 하룻강아지로 본듯했다.
아주 가볍게 보고 덤빈 것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더 강한 펀치를 준비하면서, 겉으로는 우호적으로 다가서서 좋게 해결하자고 얼렀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며, 본사와 현지 법인 직원들에게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전투 준비를 착착해나갔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파트너사 사장을 만나 고성을 지르며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달래며 설득했다.
현지에서 도와줄 이를 찾아서 만나 설득하고, 유능한 현지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방법을 찾아보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 했다.
그러기를 3년.
그 지루한 전투에서 드디어 이겼다.
상대는 굴복했고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더 큰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극한의 고통을 견딘 인내가 보답받는 순간이었고, 내가 나를 증명해 보였으며, 내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순간이었다.
그 승리의 전리품을 본사로부터 성과급이라는 결과물로 돌려받고, 직원들과 동남아 워크숍을 다녀오면서 40대 초반 첫 전투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현장에서 벌어진 전투는 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사회적 '자리'를 지킴으로써 현지 직원들을 지키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때 상황을 돌아보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웠던 것 같다.
사업이라는 것이 좋은 말로 WIN-WIN이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원초적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요즘 미국 상황을 보면 더 뚜렷하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발언들에 WIN-WIN은 없다.
그럴 때마다 똑같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막가파로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얽힌 실타래를 풀듯 내가 주인공이 되어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아마도 '이렇게 했는데도 안되면 돌아가면 되지'라는 생각도 했던 듯하다.
그렇게 40대 초반을 열며 새로 주어진 '자리'를 지켰다.
'자리'를 사수했고, 정체성을 지켰다.
회사에서 직원을 해고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자리'를 외진 곳으로 치우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았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남이 그런 상황을 겪는 상황을 본 기억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드라마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자리를 치워 버리는 것.
그것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없애버리고 존재를 부정하는 작업.
'자리'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며 곧 그 사람의 존재이기에 그 '자리'를 치움으로써 그 존재를 치우는 것으로 해고 통보를 대신하는 행위이다.
그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젊은 시절 소중한 시간을 바쳐 오랫동안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한다.
그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은 표를 찾아 헤매 다닌다.
그 '자리'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바람에 상실감을 못 이겨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도 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버리고 떠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한없이 가볍고 자유롭다.
신입사원 첫 출근날 나의 자리를 마주하며 가졌던 그 생각이 지금까지 나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 자리를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늘 그랬듯이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생각하면서 현지에서 세 번의 이직을 하면서 오랫동안 나의 '자리'를 지켰고, 작년 그 자리를 정리하고 귀국해서 그 시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내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