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회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지방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 생활 5년 동안 모은 돈으로 일산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결혼을 했다.
아들이 태어났고, 이년 후 서울로 이사하고, 딸이 태어났다.
그렇게 우리 4명의 가족이 완성되었다.
30대 초반에 내가 이룬 우리 가족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살아낸다고 바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게임을 한 듯한 느낌이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왜 태어났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알기 위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의미를 찾는 사람은 이기는 것이고, 그 의미의 카드를 찾지 못하면 지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핸디캡이 있었다.
그 게임을 하는 무대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대 환경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은 선택할 수 없고, 어떤 조건은 선택할 수 있다.
살면서 확실히 깨닫는 사실은, 삶의 전 과정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태어난 이후부터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것.
물론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유년과 어린 시절은 선택의 폭이 크지 않지만 어쨌든 의식이 생기고부터 선택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 인생의 전 과정이 선택의 과정인 것은 맞는 말이다.
20대 중반 서울로 올라와 입사해서 일을 시작할 때, 주변을 보면 별다른 핸디캡 없이 아주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았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살아내야 했다.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나의 형제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지역도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한반도, 그것도 남북이 갈린 좁은 나라인 반도 남쪽에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할 수도 없다.
배우자는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다.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의해 태어난 새 생명들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차올랐고, 30대를 살아내는 힘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가장으로 살아내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책임을 져야 할 일을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게임이 계속되었다.
무엇이 나를 떠나게 만들었나.
태어나 서른 살이 되기까지 30년을 살면서 느꼈던 현실의 벽,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 등등.
이런 것들이 당시 나의 삶을 규정짓는 주변 환경이자 동시에 살아가는 목적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한 결핍, 불만과 불안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불쏘시개가 되어 나를 이 좁은 땅에서 떠밀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더 큰 무대를 찾아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큰 무대지 실상은 이 좁고 삭막한 곳을 무작정 떠나고픈 마음이 컸다.
그러나 떠나고 싶다고 무작정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회를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이제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네 식구가 같이 움직여야 했다.
회사 내에서 기회가 있는지 몇 년을 절치부심 방법을 찾아보았다.
소득 없이 몇 년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상사가 부르더니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한 국가로 장기 출장 가라는 소리를 한다.
속으로 '내가 돌았나 거길 가게?'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처음에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거부의 뜻을 비쳤다.
몇 년 동안 살기 좋은 선진국에서의 해외 주재 근무를 꿈꾸며 노력했건만 성과는 없고, 설상가상 당시 오지로 분류되던 그 험한 나라에 혼자 장기 출장을 간다는 것은 나의 계획이 완전히 어긋난 듯 보였다.
상사와 열띤 토론을 벌이며 못 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상사와 딜을 했다.
3개월만 갔다 와서 그 나라가 아닌 다른 지역을 담당으로 맡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에 대한 확약을 받고 혼자 짐을 싸서 길을 나섰다.
홀로 나선 그 출장길은 나와 가족의 삶의 무대를 바꿔놓는 큰 변화의 서막이었다.
우리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아졌다.
떠난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며, 그 변화는 성장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래서 떠난다는 것은 성장의 다른 말이라 스스로 정의해 본다.
태어나 살면서 성장에 대한 갈구가 끊임없이 내면에서 일어난다.
현실에 대한 불만, 불평,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걱정, 불안
이름이 다를 뿐이지 성장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
그렇다면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정해진 듯하다.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성장은 변화가 반드시 따라야 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 변화에는 물론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감내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며, 주변의 시기, 질투 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번 생은 주어진 게임에서 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변화의 기회, 성장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잡는 선구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내가 전혀 알아챌 수 없는 모습으로.
30대 중반에 가족을 남겨놓고 홀로 투덜거리며 먼 길을 나섰다.
기회가 왔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