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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가장이 되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by 디제이K Feb 05. 2025

20대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제 곧 들어설 미지의 30대가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언가는 준비를 해야겠는데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또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성장을 위한 성장통으로 생각해야겠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90년대 중반 어느 겨울

12월 겨울 찬 바람이 거리를 그리고 내 마음을 스산하게 채우고 있다.

20대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며 가졌던 심정이었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것처럼, 또다시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어떤 방식이든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도움이 되는 글이 있으리란 생각으로 서점을 들렀다.

30대 삶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책을 뒤적거렸다.

국내, 해외 작가를 막론하고 '서른 살', '30대'와 관련 책을 모두 찾아 뒤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발품을 팔아 여러 서점을 들러 보물찾기 하듯 찾아 나섰다.

몇 권의 책을 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제목도 잊어버린 '서른 살', '30대'와 관련된 책들

해외 근무 중 이사하면서 짐이 된다고 폐지로 버린 책 속에 같이 묻혀 버려졌다.

많이 버리고 지금 책장에 서른 살 관련 책이 딱 한 권 남아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서른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산 책이었지만, 그다지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만 시인의 글이 좋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당시 인기 있던 시집으로 막연하게 30대를 들여다보기 위해 샀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서른 살, 30대의 삶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서른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30대 삶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미리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준비해 본들, 실제 마주하는 30대 삶의 생소한 양상들을 극복하며 살아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리라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다만 실제 도움이 되는 책을 찾지 못했더라도, 성장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과 행동 자체가 그 시기에 필요한 삶의 과정이었던 듯하다. 


어쩌면 사는 동안 매 순간 준비되지 않은 채 다가오는 새로운 상황을 그냥 맞닥뜨리고 헤쳐나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속성이 아닐지.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채 서른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결혼해 가장이 되었다.


서울에서 사회 초년병 시절을 보내며 어렵게 모은 자금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전셋집을 장만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그렇게 앞으로 나갔다.

일체 외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전셋집, 결혼식, 신혼여행, 가구 구입 등 필요한 절차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눈앞에 닥친 과제들을 해결하기에 바빴고, 시시 각각 펼쳐지는 새로운 과제들을 풀면서 헤쳐나가기에 정신없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나도, 아내도, 속된 말로 모르면 용감하다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과감하게 새로운 환경에 도전했다.

그 이후에 펼쳐진 삶을 생각해 보면, 당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르치며 기르고, 그야말로 평범한 수준의 삶을 만들어 나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너무 늦지 않게 어떤 나이에 어떤 모습을 살아야 한다는 무언중에 사회가 강요하는 프로토타입을 따라 산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때도 있지만, 정답은 없으며, 어쨌든 새로운 환경을 계속 주도적으로 만들어 도전하는 것이 삶의 속성이라 생각해 본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일을 마치고 여의도에서 일산으로 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해지는 자유로, 일산 호수공원 옆 부동산 중개소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설 때 나리던 하얀 눈, 다니는 차량이 드문 신도시 도로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던 장면이 아직 눈에 선하다.

잿빛 하늘에서 살포시 내리는 눈발. 포근했다.

당시 일산은 갓 태어난 도시여서 빈 공터가 많았다. 

한정된 예산으로 서울에서 원하는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 찾은 일산이었지만, 서울 시내의 빽빽한 건물들의 그림과 달리 그 여백이 좋았다.

그림 같은 도시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서른을 맞는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신혼 전셋집을 계약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보금자리를 만드는 과정은 아련하게 추억으로 남아 있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런 기억이 좋다. 

해외 출장을 다니며 회사일로 바빴지만,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삶의 에너지를 주었다.


몇 해 뒤 아들과 딸이 태어나고, 서울로 이사를 하고 또다시 해외로 삶의 무대를 옮기며 정신없이 30대의 삶이 전개되었다.

살아가면서 그러한 이벤트들로부터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불가피하게 힘들고 어려운 이벤트도 발생한다.

어떤 과제들은 옆에 가족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슬기롭게 극복했고, 혹은 당시에는 전혀 풀릴 것 같지 않던 문제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있었다.

삶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겠다고 각오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30대 가장 역할은 녹록하지 않았다.

국내와 해외에서 펼쳐진 30대 가장의 삶의 현장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같이 한 삶이었으며, 가족이 있었기에 시시 각각 다가오는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서른 살에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새로운 환경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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