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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그리고 30대 소고(小考)

변화를 위한 도전

by 디제이K Feb 12. 2025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 시절 주변의 대학생을 보면 매우 큰 어른으로 보였다.

나는 언제 커서 대학생이 되지 하는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10대 후반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주변 지인들을 보면 나이 서른만 되어도 어른 같았다. 우러러 보였다.

단지 나이가 든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다.

내가 어리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상대적으로 나보다 나이 든 어른은 뭔가 큰 능력이 있는 듯 보였다.


나이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삶의 여러 다양한 과정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가 먹는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또 사람이 어리다고 다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나의 30대는 성숙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고 지혜로움과도 거리가 멀다.

부딪히고 긁히고 상처가 나면서 사랑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갔다.

결혼하고 가장이 된 직후에는 독서가 사치였다.

서른에 결혼하고 그해 아들이 태어났고, 두 살 터울로 이태후 딸이 태어났다.

이제는 그야말로 가장의 무게가 실감 났다.

어깨와 등에 한가득 책임감이라는 짐을 지고 앞으로 나갔다.

책임감을 짐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살아내는 힘이 되었다.


서른 살에 가장이 되어 마주한 30대의 현실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실무를 가장 속도감 있게 처리할 수 있는 나이도 30대다.

조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이 30대인 이유가 나이가 주는 그 역동성에 있고, 자연히 일이 많아졌다.

해외출장, 보고서 작성, 워크숍, 그리고 저녁에 이어지는 술자리, 반복되는 일정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들이를 나가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30대를 보내고 있었지만 안으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요즘은 남자도 육아휴직을 하지만 당시에는 평일의 육아는 아내가 전담했다.


그런 30대의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딱히 책을 읽고 심오한 인사이트나 지혜를 발견하고 심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엄청난 업무량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새로운 상황들을 그저 헤쳐나가며, 내성이 생겼고, 그 내성의 힘으로 참으며 앞으로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나 혹은 심오한 철학서적을 읽고 영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마음의 여유 자체가 없었다.

지금 보면 핑계 같아 보이며 자기변명 같아 보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 여유로운 척 그렇게 살았더라면 좀 덜 힘들게 살아 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준비 안된 30대지만 정글 숲을 헤치고 나가듯 다가오는 새로운 상황들을 그저 묵묵히 헤치고 나가다 보니 30대가 지나 있었다.

역시 정답은 없으며, 그냥 다가오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중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주도적 변화를 위한 도전이 필요했고, 그 도전을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했다.

해외 출장으로 방문한 새로운 세상을 보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좁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목격한 사람들의 삶과 환경은 내가 나고 자라며 생활한 환경과 너무나 달랐다. 

막연한 동경일지라도 그런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했던 듯하다.

견디며 살아낼 수는 있겠지만, 이 좁고 숨 막히는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혹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생각이 힘이 되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강렬하게 원한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30대에 그런 경험을 했다.

출장을 다니며 접한 해외 삶의 환경과 현지 주재원의 삶을 보면서, 해외 주재 근무 기회를 만들어 가족과 같이 나가서 잠시라도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픈 바람이 커갔다.

사내 공지에 해외 주재원 안내가 뜨면 지원을 했고, 부서 내부적으로 의사를 비췄지만, 진전 없이 몇 년을 보냈다.


내심 유럽이나 북미 등 생활환경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지역의 주재 근무를 희망했지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가 맡고 있는 해외 법인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혼자서 장기 출장을 나갈 일이 생겼다. 

장기출장이 주재근무로 이어지고 현지에서 세 번이나 이직을 하면서, 현지 생활이 20년 동안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경험을 통해, 강렬히 원하면 언젠가 그 소망이 현실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진다는 믿음을 배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강렬한 희망을 품고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또한 매일 매 순간 노력이 필요한 것이리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모든 현실은 내가 만든다는 사실을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30대에는 이런 진리를 알리 없었고, 매일매일 불안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저 열심히 달리는 길 밖에 없었다.


신입사원을 거쳐 대리로 승진하고 해외 출장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다. 

짧게는 서너 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이 넘는 장거리 편도 출장이 잦았다.

출장길에 하늘에서 마시는 와인 한잔이 좋았다.

승무원들의 향수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면 이제 좁은 국내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희열을 느끼며 좋았고, 이륙 후 기내에서 마시는 와인 한잔이 선사하는 짧은 순간의 감각적 나른함이 좋았다.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도착해서 처리해야 할 어마 어마한 일들을 생각하면 부담이 아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와인 한잔으로 긴장을 푸는 그 순간이 좋았다.

사는 동안 어쩌면 무엇에 중독되고 그것을 갈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이 한잔의 와인일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혹은 자신만의 취미활동에 중독되어 삶의 힘을 얻어 살고 있지 않은지. 지나치지 않은 좋은 의미에서의 중독. 


우리는 무엇에 중독되어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한다.


출장길 하늘에서 느끼는 순간의 감각적 해방감이 좋았고, 그것이 결국 장기간 해외 근무로 이어져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내에서 즐기는 한 잔의 와인과, 해외 출장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에 중독되어 30대를 보냈다.

책을 읽는 것은 사치였고, 때로는 따스한 햇살도 즐기지만 비바람 몰아치는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느끼는 모든 감각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30대를 보냈다.

그렇게 정글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 30대 끝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가족과 같이 해외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도전이 좋았다. 

그러나 그 도전에는 가족의 희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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