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얼마나 간직해야 할까?
가족들과 티비를 보다가 시골집 안방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자개장을 봤다.
검은색 바탕에 오래 산다는 십장생을 새겨 넣는 게 일반적이었던 자개장은 한국의 전통공예품이다. 한때는 집에 있는 자개장의 크기로 그 집의 부를 알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아직 자개장이 남아있는 집들은 이런 역사를 집 안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티비에 나온 자개장은 이제 그런 기준치와는 맞지 않으나 화면으로 보기에도 깔끔한 게 관리를 잘 받은 모습이었다. 예전에 캐나다의 어느 이민자의 집에서도 자개장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의 시골집에서 발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난 개인적으로는 자개장을 아주 좋아하기에 바다 건너까지 가져온 정성과 노력에 감탄을 하며 그 수고를 능히 감내할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런 수고를 들일만큼의 자개장이었냐고 물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래된 것은 정리해야 새로운 것을 장만하게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 오래된 것은 언제 정리해야 하는 걸까?
어떤 물건을 오래도록 쓰다가 망가지고 닳아서 새것을 산 적은 거의 없다. 다른 스타일이 갖고 싶어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혹은 그저 마음에 들어서 새로운 물건들을 사 왔다. 옷, 신발, 노트, 펜, 그릇, 가구 등등 많은 물건을 그런 기준으로 샀다. 오래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매하기에 품질보다는 디자인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많은 물건들이 '오래된' 것들이 되었다. 다시 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버렸던 운동화 한 켤레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쉽게도 그 디자인은 다시 나오지 않아서 아직도 아쉬워하는 에피소드로 남았다. 갖고 싶었지만 사지 못했던 재킷도 기억한다. 참 정성 들여서 만든 디자인이었는데 왜 결국 사지 않았는지. 이런 기억들 때문에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정리를 시도한 적은 많다. 그래서 많은 투명 박스들이 쌓였다. 정리를 할 때마다 그 시기에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 많은 반성의 순간들이 뒤따라온다.
'왜 여기에 이렇게 많은 돈을 썼을까?'
'그때 이건 뭐 한다고 샀을까?'
'이게 아니라 다른 것을 샀어야 했는데...'
이 중에 매번 하는 반성은 꼭 필요한 물건을 좋은 품질로 사지 않았던 가벼운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내가 사용할 물건을 잘 알아보고 깊이 고민한 후에 사는 습관을 가졌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정리할 때마다 들 정도로 난 한 물건에 큰돈을 소비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써보고 더 좋은 걸로 사야지라고 접근한 적이 많았는데, 그 결과 물건은 많고 쓸만한 것은 많지 않다.
이번에 다시 한번 나의 물건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단순 재분류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거나 나눠주거나 팔아서 떠나보내려고 한다.
...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