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마음과 정성을 보이기 위해 뭐라도 준비해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 지도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회상해 본다. 사전에 메일로 연구계획서를 보내드리고 면담 일자를 잡았다. 평일 오후 5시 정도에 뵙기로 했고 회사에 오후 휴가를 낸 후 학교로 향했다. 교수님과의 첫 면담이라니, 감사한 마음과 정성을 보이기 위해 뭐라도 준비해야 했다.
학교 근처 스타벅스 DT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테이크 아웃했다. 간식도 구매할까 하다가 첫 만남인데 어떤 분위기인지도 잘 모르고 과하게 준비하면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커피만 준비했다.
학교에 도착했으나, 당황스럽게도 교수님은 연구실에 계시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피는 점점 식어갔고 텅 빈 복도에 우두커니 서있자니 괜스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30분 정도 후에 교수님께서 헐레벌떡 도착하셨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주섬주섬 식은 커피 두 잔을 들고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다. 책상은 갖가지 물품으로 뒤덮여 있었고 옆에 세워둔 화이트보드는 알 수 없는 통계 수식과 지우다 만 흔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교수님 연구실은 처음 들어와 본다. 학부 때는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논문을 작성하지 않고 시험 등 졸업 요건을 충족하여 졸업했기 때문에 개인 지도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연구계획서에 대해 말씀드리고 교수님 피드백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형편없는 연구계획서였다. 그날의 피드백은 '관련 분야의 선행연구를 전부 찾아볼 것'이었다. 사실 교수님 속마음은 ‘이런 것도 미리 파악하지 않고 왔다니, 한심하군..’이었을 수 있겠다. 30분가량의 짧은 면담이 끝나고 그제야 교수님 눈이 커피 두 잔으로 향했다. “뭐 이런 걸 사 왔어요.”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렇게 시간 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요. 별거 아니고 커피입니다.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아메리카노 한 잔, 라떼 한잔 준비했습니다. 조금 식기는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본능적으로 바로 아메리카노를 집으셨다. '귀여우신 면이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는 조금 민망하셨는지.. "다음부터는 절대 사 오지 마세요. 이번에만 받을게요."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교수님 커피 취향을 알았으니, 아메리카노로 사 오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왼손은 교수님이 선택하지 않은 식은 라떼를 들고, 오른손은 운전대를 잡고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지도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다. 만나기 전날부터 해서 1박 2일은 긴장했었던 것 같은데 허무하게도 굉장히 짧은 면담이 진행되었다.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30분가량의 짧은 면담이 지속되었다. 본격적으로 논문 작성에 돌입하기 전까지 말이다. 통계가 확정되고 본문 작성이 들어가자, 면담 횟수는 더 잦아졌고 면담 시간은 훨씬 더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