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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민 Jan 01. 2025

떡국


별 것 아니었던 그것이, 일상적이었던 그것이 지금 내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기억이 된 것이다.




딸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그녀가 마라탕에 빠져 매주 한 번씩 배달시켜 먹던 초등학교 6학년, 2년 전쯤 이였을 것 같다. 중학교 입학 후 아침에 준비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아침은 먹지 않겠다' 선언했고, 또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저녁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 먹겠다' 선언하였다. 매일 끼니 걱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무얼 해줘야 하지?'라는 고민이 사라진다는 건 엄청난 자유였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딸아이의 선언을 지지했다. 이제 내게 남은 고민이라고는 고작 회사에서 먹는 점심 메뉴? 가끔 친구와 갖는 저녁 술자리에 적절한 안주는? 정도일 뿐.


어쨌든 저녁 식사에 대한 딸의 독립선언 후 한동안은 퇴근하고 엉망진창인 주방과 이해 못 할  음식들이 널브러져 있는 냉장고를 견디어 내야만 했다. 유난히 힘들고 지치던 어느 날에는 그 풍경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왠지 무서운 따님에게는 한마디 잔소리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구시렁구시렁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정리하며 화를 삭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3개월?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다이어트 메뉴들의 향연이 끝나고 그녀는 결국 작은 햇반과 조미김에 안착했다. 내가 먹는 저녁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기 방에서 핸드폰과 함께, 내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을 홀로 해치우는 '나는 저녁 안 먹어'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끼니 걱정에서 해방되는 대신 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를 잃게 되었. 커가는 과정이고 독립적인 행동이라 생각되어 식탁에 함께 앉아 먹는 시간을 나의 일상에서 잠시 지우기로 했다.(주변에서 그맘때 딸은 그냥 아빠가 싫어진다고 하기에 크면 돌아온다 하기에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 가끔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묻거나, 브런치 카페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물어도 긍정적인 답변은 아직 들을 수가 없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떡국 생각이 났다. 지난 여름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 새해 첫날 어머니께서 만두를 넣고 떡국을 하시면 아버지는 떡을 많이, 나는 만두를 많이 담아 먹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떡이 가득 담긴 그릇과 만두가 수북했던 그릇은 기억이 나는데 그것이 몇 년 전의 기억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예전에는 의례 새해 첫날 식구들이 밥상에 모여 앉아 함께 떡국을 먹었고, 특별할 게 없는 일이었으니 잊혀진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의 몇 년도 쯤이 부모님과 함께 먹은 새해 첫날 떡국의 마지막일 듯싶었다. 취업을 하고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된 이후로는 구정이면 모를까 1월 1일은 부모님 댁에서 함께 지낸 적이 없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또 생각해 보니 별  아닌 새해 첫날 끓여 먹던 떡국이, 아버지와 나누어 먹던 떡과 만두가 이제는 영영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 것 아니었던 그것이, 일상적이었던 그것이 지금 내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기억이 된 것이다. 지난 신정에라도 같이 떡국을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20년도 넘었을 떡만 가득 담긴 국그릇과 만두가 수북한 국그릇에 대한 기억이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 앞으로 내가 딸아이와 먹는 떡국은 몇 그릇이나 남아있을까?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에서 내 나이를 빼보니 딸아이와 새해 첫날 먹을 수 있는 떡국이 스무 번 조금 넘게 남아있는 수준이다. 곧 딸도 성인이 되고 자기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게 된다면 그마저도 이제 열손가락 안에 꼽을 판이다. 

그동안은 아무 강요 없이 너 편한 대로 하라는 마음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 새해 첫날에는 떡국을 끓여놓고 식탁 앞에 와서 좀 앉아보라고 해야겠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번 새해 첫날은 저녁에 꼭 함께 앉아 떡국을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말해보아야겠다. 떡이 좋은지, 만두가 좋은지 묻고는 좋아하는 것을 하나쯤 딸아이의 그릇에 양보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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