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찾아오는 순간, 나는 종종 그것을 제거하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지게’ 하려 했다. 그것이 내게 말을 걸기도 전에, 그 말의 뜻을 읽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덮었다. 순간의 고요와 안정을 얻기 위해. 어쩌면 나는 고통을 껴안는 법보다, 고통이 없다는 세계를 더 잘 그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 고요는 언제나 응급조치에 가까웠다. 상처를 꿰매는 것이 아니라, 붕대로 감추는 일이었다. 문제의 씨앗은 그대로 내 안에 자라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진짜 문제인지조차 모른 채, 자주 길을 돌았다. 분명히 마음 어딘가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속삭임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말이 되는 날까지 애써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최근, 마치 오래 잠겨 있던 우물에서 물소리가 다시 들리듯, 내 안의 무언가가 고요를 깨뜨렸다. 이제야 나는 안다. 그 불편한 감정들, 도려낸 상황들, 바꾸어버린 환경들—그 모든 것이 실은 내 삶의 ‘증상’이었다는 것을. 나는 증상을 제거하며 살아왔지만, 그 증상의 근원은 단 한 번도 뿌리째 뽑히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제거해왔다. 그것은 마치 시끄러운 악기를 무대에서 치워버리는 행위 같았다. 나는 그것을 능력이라 불렀고, 통제력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 채, 무대 전체를 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즉각적인 변화, 급작스런 회피—그것들이 내 방식이었고, 나는 그것이 현명함이라고 믿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방식이라며, 그 안에 자만을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용기는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는 것이다. 곁에 앉히고, 시간을 들여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협하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일. 오래 걸리고, 에너지를 많이 들이며, 종종 두려움을 동반하는 그 느린 걸음이야말로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나는 한때, 내가 만든 구조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법을 배웠다. 루틴은 나를 지켰고, 시스템은 나를 안정시켰으며, 단순함은 내 에너지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거기서 조용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예감이 점점 짙어진다.
이제는 그 틀을 부숴야 할 때다. 다시 혼란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익숙함을 놓고, 낯섦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엔 분명히 힘들 것이고, 어쩌면 실패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실패 너머에야말로, 진짜 나를 위한 더 넓고 깊은 평온이 있다는 것을.
그 평온은 외부의 정적이 아니라, 내면의 침묵이다. 외부 세계를 통제해서 얻는 안정보다, 내 안의 격랑 속에서도 잃지 않는 중심. 그곳을 향해, 나는 이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그림자를 지우는 삶이 아니라, 그림자를 낳은 빛의 방향으로. 나는 이제, 나를 덮던 안개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안개를 걷어내며 진짜 풍경을 마주하려 한다. 삶은 그렇게, 점점 더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지금, 이 순간 나는 조금 더 깊이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