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위기 극복의 협상력

- 쿠바 미사일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by BYC

영화 ‘D-13(Thirteen Days, 2000년 미국 제작)’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의 벼랑 끝에 섰다.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시작된 이 위기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영화는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팀이 어떻게 이 역사적 위기를 해결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원제 13일(Thirteen Days)은 쿠바 위기로 인해 세계가 핵전쟁의 위기에 직면했던 기간을 의미한다.


고조되는 위기감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 상공에서 충격적인 사진을 촬영했다.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미사일 발사 시 미국은 단 5분의 경고 시간만 갖게 되기 때문에 거의 무방비로 공격을 당하게 된다. 미사일은 10~14일 내에 작전 가능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부각되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 부처의 핵심 인물들로 구성된 국가안보회의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소련의 미사일 배치에 대응할 여러 옵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위원회에서 우선적으로 검토한 옵션은 군사적 행동이다. 즉, 미사일 기지를 정밀 타격하고, 나아가 쿠바의 방공 시스템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공습을 가한 후 쿠바에 대해 전면적인 침공까지 고려한 시나리오였다. 합동참모본부는 “개가 우리 마당을 파헤치는데 쏴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 미사일 기지가 작동되기 전에 빨리 결정해야 하며, 다른 대안들은 절대 이만큼 확실하지가 않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선택 폭도 좁아진다”라고 말하며 케네디의 결단을 촉구한다.


군사적 옵션은 모든 미사일을 확실히 제거하고 카스트로 정권을 물러나게도 할 수 있지만, 소련의 보복과 핵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컸다. 케네디는 다른 옵션을 모색하였고, 이에 떠오른 대안이 해상 봉쇄이다. 용어상 전쟁 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검역(Quarant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 전략은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해군이 차단하여 검색한 후 무기를 실은 선박은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군사적 옵션은 유지하면서 소련에게 철수할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즉각적인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확실한 대안이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케네디가 자신의 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었다.


“지난여름에 ‘8월의 포성(The Guns of August)’을 읽었는데 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1차 대전에서는 1300만 명이 죽었어. 양 진영 간의 군대는 서로의 움직임과 군사력 배치에 너무 민감했고,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했지만 그들 생각은 마지막으로 치렀던 전쟁에 기초한 것이었어. 하지만 세상과 기술은 변하였고 기존의 이론들은 더 이상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전부였고 그렇게 명령은 떨어졌지. 바뀔 수도 없는 거지. 전쟁터의 군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왜 그들의 인생이 파괴되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지. 왜 아무도 그걸 멈출 수 없었지? 뭘 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케네디는 기존 경험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공식/비공식 채널을 활용한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미국은 흐루쇼프로부터 비공식 채널을 통해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수할 의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하지만 두 번째 메시지에는 터키 미사일 철수를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었고, 이는 소련 내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케네디 팀은 혼란스러웠다. 첫 번째 편지에 응답하고 두 번째 편지는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두 번째 편지의 조건을 수용할 것인가? 이 결정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이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대안 찾기


케네디는 자신의 동생이자 법무부장관인 로버트 케네디를 소련 대사 도브리닌에게 보내 담판을 짓도록 하였다. 로버트는 “미국은 흐루쇼프의 첫 번째 편지 조건을 수용,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하면 미국은 쿠바 침공을 하지 않는다. 터키에 배치된 미사일에 대해서는 6개월 내에 철수할 것을 비공개적으로 보장한다. 그리고 이 비공개 보장이 공개될 경우 미국은 당장 부인할 것이며 합의는 무효화된다.”라는 제안을 전달한다.


마침내 다음날 아침, 모스크바 라디오는 소련은 쿠바의 무기를 해체하고 소련으로 반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3일간의 위기가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핵전쟁의 벼랑 끝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조직이나 리더는 기존에 성공을 가져다준 관행이나 업무 방식을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다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오만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이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도 “그것은 이미 해보았는데 효과가 없었다”, “지금까지 잘 되고 있는데 왜 해야지”라고 말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배격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케네디는 환경, 상대방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대안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발전시켜 결국 평화적 합의안을 이끌어 내었다. 만약 케네디가 기존 성공 체험이나 관행만을 쫓아 의사결정을 했다면 인류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을 수도 있었다.



균형 잡힌 접근


케네디는 강인함과 유연성의 균형을 보여주었다. 그는 군사 참모들의 의견에 무조건 휘둘리지 않고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또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과 전 세계에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며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소련에게 필요하다면 군사적 행동도 불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다양한 협상창구를 통해 소련에게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출구도 제공했다.


케네디는 협상이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상호 교환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협상이 '제로섬'이 아니라 상호 Win-win의 가치 창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조건만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케네디는 또한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뜻하지 않았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빌미를 가능한 한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잘 엿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이 미사일 기지의 준비 상태를 확인하고 공습 목표물을 확인하기 위해 쿠바 상공에 저공 정찰 비행을 시작할 때, 케네디의 특별보좌관 케니 오도넬이 조종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상황에서도 격추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전하는 장면이다. 조종사 개인이 막는 데 한계가 있는 일이지만, 만약 정찰기가 격추되면 군사 참모들은 케네디에게 보복 공격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명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격이 이루어지면 의도치 않았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작은 오해나 사고가 통제 불능 상태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하는 케네디의 염원이 담긴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13일 동안의 긴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케네디는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특히 그는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도 비공개적 협상을 병행하였다. 그리고 소련이 명예를 지키며 물러설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 소련은 미래의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핫라인'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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