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 다름의 중요성

-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 풀기-

by BYC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 2015년 국내 개봉)’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인명을 구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 앨런 튜링 역에는 영국 TV 드라마 ‘셜록’, 마블 시리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가 맡았다.


영화의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이 제시한 컴퓨터의 사고력의 수준을 판단하는 실험으로, 일반적으로 ‘튜링 테스트’라고 불린다. 이는 질의자가 사람과 컴퓨터와 동시에 질문과 대화를 한 후에 컴퓨터의 대답이 인간의 대답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그 컴퓨터의 인공지능 지수를 매기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현재의 인공지능 모델은 튜링 테스트 관점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암호 해독, 새로운 접근이 필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영국은 독일군의 무전 암호기인 '이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비밀 프로젝트팀을 만든다. 그리고 이 팀에 앨런 튜링도 참여하게 된다. 팀은 수작업으로 암호를 풀기 위해 작업에 몰두한다. 하지만 튜링은 수작업으로 24시간마다 바뀌는 이니그마의 암호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튜링은 프로젝트의 관리자인 군 장교를 만나 이니그마 암호를 풀기 위해서는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며, 이러한 암호 해독 기계를 제작하는 데 100,000파운드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군은 그런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쟁을 이겨 본 적 있는가, 튜링? 난 이겨 보았네. 무엇이 있어야 이길 수 있는지 아는가? 질서, 규율, 지휘 체계이지. 자네는 더 이상 대학에 있는 게 아니야. 아주 거대한 시스템의 아주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당신은 당신의 지휘관이 지시하는 일을 해야 하네.”


물론 장군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예산이 압박을 받는 시점에서 막대한 돈이 필요한 튜링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빨리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데, 새로운 기계 제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마저 큰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존의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생각과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장군이 승리를 경험했을 때 필요했던 조건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필요한 승리 조건은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실제로 달랐다. 하지만 장군은 자신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성향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튜링의 아이디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좀 더 개방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의견을 조율하여 튜링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두 가지 방안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처칠의 결단, 지원


튜링은 장군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장군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그에게 묻는다. 장군은 다우닝 가 10번지에 사는 윈스턴 처칠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결정에 불만이 있으면, 그에게 가져가 보라고 말한다. 튜링은 편지를 써 인편을 통해 처질에게 전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튜링은 프로젝트팀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처칠이 어떻게 튜링을 팀의 책임자로 임명하였을까’라는 것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튜링이 팀의 책임자가 되지 않았다면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분명 더 어려웠을 것이다. 처칠의 튜링 임명은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처칠이 튜링을 직접 프로젝트팀의 책임자로 임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젝트 초기 튜링을 비롯한 팀 동료들은 윈스턴 처칠에게 직접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를 받은 처칠은 상황의 중요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즉시 제공하라(Action This Day)’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처칠의 전폭적인 지원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리더로서 처칠은 사안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일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실행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리더의 자질은 지금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반드시 요구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름과 뛰어남을 인정한 동료들


암호해독 기계를 만들게 되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튜링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던 군 책임자는 이참에 튜링의 작업을 중지시키고 그를 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부하들에게 기계를 멈추고 튜링을 부대밖으로 데려가라고 이야기한 순간, 동료들이 달려와 이를 막는다. 그리고 그를 해고시키려면 자신들도 해고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기간을 얻어낸다. 그리고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암호문을 풀 수 있는 기계를 완성해서 전쟁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영화에서 보면 튜링은 유아독존적 성격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튜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동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동료들은 수작업으로 암호를 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그의 방법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괴짜이기는 하지만 목표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그의 열정과 능력을 인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자신들의 자존심 보다 그의 다름과 뛰어남을 인정하고 같이 작업한 동료들이 없었다면 암호 해독 프로젝트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니그마 암호 해독은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들고 나온 튜링, 그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준 처칠, 튜링을 신뢰하고 같이 작업한 동료들의 힘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된다.


예상밖의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앨런 튜링은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가 남기 유산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암호 해독을 통해 튜링과 그의 팀은 전쟁을 최소 2년 단축시켰으며, 14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튜링의 ‘범용 기계’ 개념은 오늘날 모든 컴퓨터, 나아가 인공지능의 기초가 되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언제나 튜링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 여자 동료인 조안 클라크(키아리 나이틀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아침, 나는 당신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도시를 지나가는 기차를 탔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아마 죽었을 사람에게서 표를 샀고요. 나는 전적으로 당신 덕분에 생겨난 과학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죠. 당신이 평범했기를 바란 적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세상은 당신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히 더 나은 곳이 되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는 법이라고요(Sometimes it is the people who no one imagines anything of who do the things that no one can imagine).


조안의 말은 편견에 갇힌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야 말로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꿔 나가는 혁신이 종종 예상 밖의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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