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영화 ‘워스(원제: What is life worth? / 2020년 제작)’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테러 공격 후 항공사들은 피해자 가족들의 집단 소송을 우려하여 의회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의회는 소송을 막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 보상 기금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9/11 희생자 보상 기금의 특별 관리인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변호사 켄 파인버그(마이클 키튼)이다.
영화 전반부 켄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목숨 값은 얼마일까(What is life worth)?”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법적으로만 봤을 때 이 질문엔 정답이 있다. 숫자가 바로 답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켄은 피해자들의 목숨 가치(숫자)를 어떻게 산정할까?
목숨값의 산정
켄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난제는 피해자 가족의 80% 이상이 서명하지 않으면 기금이 무효화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가족을 설득해서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켄은 청구액 산정 공식을 가지고 가족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그가 판단하기에 가장 공정하고, 법적으로도 필요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소방관과 펀드 매니저의 목숨값이 왜 달라야 하냐면서 공식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기금을 통한 보상이 피해자 가족들의 입을 틀어막어서 소송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불만도 제기했다. 특히 한 피해자의 남편인 찰스 울프는 ‘Fix th Fund’라는 웹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산정 공식의 활용은 피해자를 존중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며 보상 기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반면, 급여가 높은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가족들은 기본급만이 아니라 성과급도 보상 금액 산정 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보상액을 높이라고 압력을 넣었다. 동시에 변호사들은 항공사를 고소하는 것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하는 상황이었다. 마감 기간 5일 전까지도 서명을 한 가족들의 비율은 매우 낮았다.
정의로운 평가 기준은?
켄이 추구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가를 통해 보상을 받은 가족들이 이를 인정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가족들이 지급되는 보상이 정의롭다고 공감한다면, 보상 금액이 흡족하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기능성이 높다. 문제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켄의 평가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이다. 하지만 올바르고 공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고,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거나, A라는 상황에서는 옳지만 B라는 상황에서는 옳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상 관점에서 정의를 보는 관점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평등(Equality)의 관점이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고르게 대우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목숨은 다 중요한데 왜 펀드 매니저와 소방관의 보상 금액이 차이가 나느냐고 항변하는 것이 어찌 보면 평등의 관점이다. 평등의 관점에서 보상을 한다면 보상에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게 보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평등 관점에서 일부 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입 사원의 초봉이 업무의 내용, 나이 등과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으로 설정하거나, 구성원들의 승진 시 연차나 기존 급여와 상관없이 해당 직급의 초봉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을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호봉제를 통해 같은 직급의 모든 구성원들의 급여를 매년 동일 금액으로 인상하는 것도 평등에 기반한 제도 운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필요(Needs)의 관점이다. 관련된 사람들의 처지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해자 가족들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가족은 보상금이 없어도 사는 데 문제가 없다. 반면 어떤 가족들은 당장 돈을 받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렵고,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보상금으로 충분치 못한 경우도 있다. 개개인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한 보상은 딱딱한 공식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연공제(근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금과 직급이 자동적으로 높아지는 제도)의 경우, 근무 연수가 많아질수록 역량이 높아진다는 가정에 기반하였지만 동시에 나이가 들면 가족 부양, 노후 준비 등으로 인해 보다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고려한 제도이다. 또한 가족 수당, 학자금 지원 등도 필요에 기반한 제도 운영의 예라 할 수 있다.
셋째, 공정(Equity)의 관점이다. 공정에 기반한 보상은 각자의 상황, 조건 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맞춰 적정한 금액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인의 성과 기여도 차이에 따라 보상 금액을 달리하는 것이다. 켄은 희생자의 나이, 소득, 부양가족 수 등에 기반한 수학적 공식으로 보상금을 산정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또는 희생자 유형(예: 금융 전문가 vs. 소방관)에 따라 보상금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갈등과 문제는 발생한다. 특히, 아무리 큰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보상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보상과 관련된 갈등을 최소화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켄이 어떤 어떤 선택을 해도 비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법적·경제적 사안이 아닌 진정성과 공감의 문제
켄을 비롯한 기금 운영 관련자들이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피해자 가족의 관점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보상금 지급 공식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정서적·심리적 위안뿐만 아니라 보상 제공의 편의성 등 필요한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파인버그는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고, 가족들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솔직하게 시인한다. 이러한 진정성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Fix th Fund’를 운영하면서 켄을 강하게 비판하였던 울프도 “그의 핵심에는 도우려는 욕구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기금 수령에 서명하는 것을 지지했다.
운영진이 피해자와 그 가족을 존중한다는 여론이 퍼지면서 서명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최종 서명 비율은 목표를 훨씬 상회한 97%에 달하였다. 9/11 희생자 가족들에게 정의로운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닌, 인간의 상실과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