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작은 따스함이 아주 오래 남는다
발표만 하려고 하면 목소리부터 떨리고, 누가 나를 주목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자리가 나는 버겁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괜찮지 않다. 그래도 집 밖으로 나가 혼자 끼니가 될 재료를 골라 계산하고, 음식점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고, 혼자 자주 가는 카페를 들어가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가까이 앉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이어폰 없이 내가 할 일을 마주한다. 예전에는 이게 나의 병인줄 몰랐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깨져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각자의 무게만큼 살아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모순되게도 그게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고 나도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혼자만의 고충이 아니니 이제는 조금 받아들여도 괜찮다. 억울하겠지만 받아들이면 조금은 편안해질 거야.‘ 고 위로하고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 괜찮다.
이런 시기에 나와 같이 발표를 할 때 떨며 힘들어하고 손이 차디차게 변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이 단순히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내게는 아픔으로 보였고 느껴졌으니까. 말없이 손잡아주고 그렇게 아버지의 대장암 판정을 받으며 나는 그녀 B에게서 자그마한 죽 쿠폰을 받았다. 어린 나이였고 처음 아버지를 위한 위로가 아닌 보호자인 내 안위를 위하는 그녀의 배려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사소한 마음 소소한 마음일 수 있는 것들이 때아닌 날엔 어떠한 선물보다 귀중한 빛으로 와닿는다. 아버지의 암 완치판정을 받고도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때로는 작은 따스함이 마음 한편에서 아주 후미진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남는다. 찾다 보면 고마운 마음들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