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애매한 것을 좋아했다.
계절로 치면 봄과 여름 사이, 5월의 마지막주 즈음. 또 여름과 가을 사이 10월의 매미 우는소리에 초저녁이면 부는 가을바람 그 바람냄새. 그 애매한 온도와 그 애매한 풍경. 내가 좋아하는 색도 똑 떨어지지 않는 연보라, 연두와 민트색 그 사이의 색감. 주황과 분홍 그 사이 자몽노을 색. 그래서일까? 옷도 종이도 물건도 지금의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와 맞지 않는 줄있는 이어폰, 자동우산 아닌 손잡이 장우산. 그리고 빈티지한 옷과 소품들 그 손때 묻은 것들이 나는 참 좋다. 어딘가에서 누구의 손으로 그렇게 변형되어 왔는지 그 하나하나의 역사가 담겨 있어 그걸 상상하며 쓰고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취향 탓에 누구는 나를 애매한 사람, 혹은 외골수로 느끼기도 하고 특이한 취향으로 보기도 하였지만 조금씩 세상의 유행에 따라가는 삶을 살며 이렇게 아날로그와 현대식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의 선을 아슬아슬 타며 취향고수하기를 줄기 곤 있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종이책으로 읽으며 색연필로 밑줄 긋는 게 좋은 나 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 탓에 사람도 똑 떨어지지 않는 성격의 사람을 좋아했다. 여지를 주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를 주기도 하는. 20대 때는 아파서 연애를 많이 할 기회가 적었고, 그 와중에 무슨 용기였는지 열망이었는지 막연하게 또래처럼 할 것 다 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돌파구를 찾는 심정으로 굳게 닫힌 문을 마구 두들겼다. 당시의 나는 마음과는 모순되게 높은 이상과 삐뚤어지고 높기만 한 자기애로 인해, 다니던 학원에서 만난 지인에게 부탁하여 소개팅자리를 부탁했다. 그 자리에서 한 또래 남자아이와 짧은 시간 인연을 맺었다. 그 아이도 지금 생각하면 참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너무 미숙해서 내게는 정확히 사랑이 아니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성일 수 있고, 그냥 평범한 여자 사람일 수 있다는 기쁨을 처음 알려줬으니 말이다. 지금의 내가 누구를 만나 인연을 맺는데 용기의 시발점이 되어준, 참 고마운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듯 첫 기억이 첫사랑은 아닐지라도 고마운 기억을 안겨준 존재 정도로 남겨진 이들이 있진 않을까? 소통의 창구마다 이야기가 넘쳐날 소재들이다.
새로이 또 새로이 취향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변화의 흐름에 맡겨 정해진 틀에 날 가두지 않고 살아간다.
이게 지금의 삶이 가장 자유로운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