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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고 Dec 26. 2024

새벽에 마시는 식혜

행복을 마시는 일

행복한 새벽녘 겨울이라 그런지 동이 늦게 터서 나의 새벽이 길어졌다. 

여느 날과 달리 오랜만에 새벽예배를 다녀오며 하루를 글과 함께 시작한다. 관종은 아니지만 때로는 관종이고 싶은, 어딜 가면 꼭 TMI를 하기도 하고, 어딜 가면 꼭 입을 꾹 다문채 아무 말도 없는 사람. 오지라퍼였다가 무관심했다가 알 수 없게 만드는 사람. 그게 나인데, 이런 내가 나여서 감사한 것은 확실한 취향, 호불호 없는 식성을 가졌다는 것에 있다. 힐링푸드도 딱히 없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딱히 싫은 것도 싫은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편견 없이 살아가고 제약 없이 대상을, 행위를 바라봄에서 오는 행복이 크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참 이런 내가 좋다.


전에는 용기내기 어렵고 혼자 다치고 닫혀 조용히 일방적으로 손절하는 일도 참 많았다. 그들에게 내가 준 상처와 오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마음의 응어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들은 그렇게 타인의 말과 행동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진부한 말이지만 나는 아픈 만큼 성숙이라는 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20대 때는 몰랐던 삶에 대해 정말 가져야 할 자세와 사람에게 가져야 할 존중과 태도 그 모든 가치들을 알게 해 준 시간들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사랑하는 남동생과 친하지 않게 살아온 게 20년이 넘는다. 이상하게 우리는 애증이라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남동생의 아픔과 나를 향한 진심이 눈을 보면 보인다. 남동생이 사놓은 식혜 한 캔으로 숙취를 달래며, 행복을 마신다. 회복되고 다시 붙여진 관계들. 어쩌면 나만 손 내밀면 그만일 뿐이었던 상황들, 단순하게 생각해 볼걸. 이제라도 용기 내 준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맙다. 행복은 용기에서 온다. 새벽에 마시는 식혜 같은 시원 달달한 삶을 나는 여전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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