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반, 우리는 하동 평사리에 있었다

519일, 목소리들이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 완독기(음성 포함)

by 허배우 actorheo

대하소설 《토지》는 그런 책이다.
한 번쯤은 읽어야 할 것 같고, 막상 읽자니 겁이 나는 책. 이름만으로도 압도적인 20권의 분량, 첫 권부터 독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가계도와 인물들, 그리고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좀처럼 건너지지 않는 시간의 두께. 누구나 호기롭게 첫 권을 펼쳤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책갈피를 끼워 넣고 물러나게 되는 책. 나 역시 여러 번 그 앞에서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혼자 읽지 않기로. 대신 목소리를 빌리기로.
모임의 이름은 ‘월수금토지’였다. 단순했지만 어딘가 결의에 찬 이름.

2022년 7월 4일, 우리는 그 이름 아래 처음 모였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새벽 6시 30분. 장소는 각자의 방이었고, 집합지는 줌 화면이었다. 카메라는 켜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 시간의 본질은 얼굴보다 목소리에 더 가까웠다. 검은 화면 위로 마이크 아이콘이 하나둘 들어오고, 잠에서 막 깨어난 숨과 기침과 짧은 인사가 회의실에 얹혔다. 광주와 서울, 각자의 도시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한자리에 모였다.


“자, 그럼 오늘은 1권 첫 페이지부터 읽어볼까요?”

리더가 그렇게 말하면 낭독이 시작됐다.
우리는 차례대로 한쪽씩 읽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물러나면 다음 사람의 목소리가 이어받았다. 40분. 6시 30분부터 7시 10분까지. 출근 전의 시간으로는 짧지 않았고, 《토지》 앞에서는 턱없이 짧았다. 그날 분량을 다 읽지 못하면 남은 부분은 각자 읽어 와야 했다. 함께 읽는 시간과 혼자 읽는 시간이 겹치면서, 이 모임은 어느새 묘한 균형을 갖게 되었다. 새벽의 낭독이 서로를 붙드는 연대의 시간이라면, 남은 분량을 채우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읽고, 각자 따라 읽었다.
같은 문장을 나눠 읽으면서도 각자 다른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어떤 이는 출근을 준비했고, 어떤 이는 집안이 아직 잠든 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작은 목소리로 페이지를 넘겼다. 비디오를 끄고 오직 목소리로만 만나는 새벽은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냈다. 평소의 표정과 몸짓 대신 숨소리와 말의 리듬, 문장을 건네는 방식이 그 사람을 설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새벽마다 조금씩 하동으로 이동했다. 어떤 날은 간도였고, 어떤 날은 진주였고, 어떤 날은 다시 최참판댁의 마당이었다. 현실의 주소는 달랐지만 문장 속 도착지는 같았다.

낭독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눈으로 읽을 때 지나쳐버리던 문장이, 입을 거쳐 귀에 닿을 때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활자는 목소리를 만나면서 체온을 얻었다. 특히 감정이 깊어지는 장면에서는 그 차이가 더 컸다. 시각이 사라진 검은 화면 속에서는 오직 소리만이 남았고, 사람은 소리 앞에서 의외로 무방비해졌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새벽이 있다. 6권, 서희와 길상의 감정이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이 치닫던 장면이었다.

“서희는 죽지 부러진 새가 되어 누워 있다.”
“사나이의 무한한 자신, 거칠고 힘찬 야성이 드디어 춤을 추는 것이다.”
“내 처 될 사람이오.”

그 문장들이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던 순간, 회의실은 잠시 고요해졌다. 그 정적이 좋았다. 아무도 감상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장면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활자로만 읽었더라면 내가 그 장면을 이렇게까지 오래 기억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의 숨과 떨림을 실은 문장은, 읽는 것을 넘어 거의 겪는 일에 가까워졌다. 그 새벽, 서희와 길상은 소설 속 인물이기보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두 사람 같았다.

하지만 20권의 긴 여정 끝에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용이와 월선이었다.

평생을 엇갈리면서도 끝내 서로의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나지 못했던 두 사람.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었고, 미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깊었던 관계. 특히 월선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용이가 그녀를 품에 안고 묻는 장면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니 여한이 없제?”
“네, 없십니다.”


[마로니에북스, 토지 8권, 243~244쪽

용이와 월선의 대화 허배우의 낭독]

나는 그 짧은 문답 앞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 어떤 문장은 길지 않아도 사람의 한 생을 다 담는다. 용이의 물음은 내게 “내가 너를 가장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지?”라는 말처럼 들렸고, 월선의 대답은 “압니다. 그러니 이제 됐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다.

사랑에는 늘 다 이루어진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엇갈리고 망가지고 늦어버린 마음조차 사랑의 한 모양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장면에서 다시 배웠다.

젊었을 때의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을 쉽게 판단하곤 했다.

왜 저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왜 조금 더 단호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삶에는 정답보다 사정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토지》를 함께 읽으며 내게 가장 크게 찾아온 변화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선택들이 이제는 이해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는 마음이 “그래, 그럴 수 있지”로 바뀌었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문장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해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책은 끝내 사람을 판단하는 쪽이 아니라 품는 쪽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박경리의 시선이 내게 오래 위로가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토지》에는 수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거대한 군상 속에서 단 한 사람도 함부로 다뤄지지 않는다. 중심에 선 인물만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이름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 심지어 비열하고 모질게 그려지는 인물들조차도 작가는 기능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삶의 맥락이 있고, 저마다의 사정과 슬픔과 욕망이 있다는 것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그 시선은 내게 낯설 만큼 다정했다.

매일의 조직생활 속에서 사람은 자주 순번과 등급으로 분류된다. 누가 핵심인지, 누가 주변인지,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별 의미 없는 배역인지. 효율과 평가의 언어 속에 오래 있다 보면 나 또한 모르게 그런 눈을 갖게 된다.

그런데 《토지》를 읽는 동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거기서는 누구도 완전히 배경이 아니었다. 저마다 자기 삶의 중심이었다. 우리네 삶에 단역은 없다는 것. 그 사실을 박경리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인물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 점에 자주 마음을 빼앗겼다.

물론 519일의 시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우리의 목표는 2주에 1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정해진 분량을 따라가고, 새벽 낭독까지 빠지지 않고, 거기에 개인 독서까지 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어느 순간부터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말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리더가 말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다 같이 완주합시다.”

그리고 진도표는 3주에 1권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가 좋았다. 속도를 늦춘 것이 아니라 방향을 분명히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 여정은 만만하지 않았다.

시작한 지 불과 넉 달쯤 지난 2022년 11월, 여섯 개였던 마이크는 네 개가 되었다. 누군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났다. 남겨진 사람들은 말없이 그 공백을 받아들였다. 거대한 소설을 읽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어쩌면 긴 시간을 같은 리듬으로 살아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버거운 계절은 오는 법이니까.

그 뒤로 남은 네 사람은 서로의 목소리에 더 기대게 되었다.

어떤 날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아침을 맞기도 했다. 운전대를 잡고 출근해야 하는 날도 있었고, 몸이 천근만근이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줌 이름을 ‘허배우(듣기)’처럼 바꾸고 접속했다. 오늘은 낭독을 못 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있겠다는 표시였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조금 뭉클해진다. 사람을 붙드는 것은 늘 대단한 헌신이 아니다. 끝까지 못 읽더라도 접속하는 일, 오늘은 말하지 못해도 듣고 있겠다고 알려주는 일, 그런 사소하지만 끈질긴 성실함이 관계를 오래 데리고 간다.

그렇게 목소리만으로도 서로에게 충분히 단단한 위로가 되어가던 2023년 3월, 우리는 마침내 까만 화면 밖에서 만났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의 동지들은 모두 서울 사람들이었다. 나는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기꺼이 서울로 향했다. 줌 바깥에서 처음 오래 마주 앉던 날, 늘 듣던 익숙한 목소리 위로 각자의 표정이 천천히 포개지는 순간은 묘하게 벅찼다.

아직 《토지》의 절반을 겨우 넘어선 시점이었고 완독까지는 까마득한 산맥이 남아 있었지만, 그날 서울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우리는 암묵적으로 확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네 사람은 끝까지 이 평사리를 함께 걸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2023년 12월 4일, 우리는 마침내 마지막 권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했다.

길고 긴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작품 안에 광복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누군가의 훌쩍이는 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들려왔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모두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검은 화면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얼굴은 익히 아는 사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표정보다 목소리의 떨림이 더 또렷했다. 어떤 완주는 환호보다 안도에 가깝고, 어떤 기쁨은 소리보다 숨에 먼저 묻어난다.

우리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완독 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2024년 7월,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문학관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광주에서, 또 각자의 도시에서 출발해 하루 만에 원주를 다녀오는 일정은 분명 무리였지만, 그 무리를 감수할 만큼 다시 함께 걷고 싶었다.

서울에서 이미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519일의 새벽을 온전히 통과한 뒤 다시 마주한 얼굴은 또 달랐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인데도 조금 새롭게 보였다. 낭독은 사람의 말투뿐 아니라 침묵과 호흡까지도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어서, 문학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조차 이전과는 달랐다.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아, 이런 표정으로 그 문장들을 읽으셨겠구나.”

선생님의 옛집을 거닐고 문학관을 둘러보며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또 한 권의 긴 소설을 함께 통과한 동지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용이가 월선을 안고 여한이 없느냐고 묻던 장면에서 누가 얼마나 울었는지, 어느 날 누구의 낭독이 유난히 좋았는지, 새벽에 겨우 눈을 뜨고도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텨냈는지. 우리는 소설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19일 동안 쌓인 목소리의 기억이 그날 각자의 얼굴 위에 한 겹 더 포개졌다.

돌이켜보면 내게 남은 것은 《토지》를 완독 했다는 성취감만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함께 읽어낸 시간 자체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 속에서 한 문장씩 건네받던 호흡, 이어폰 너머로 건너오던 타인의 목소리,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에서 “그럴 수 있지”로 조금씩 넓어진 마음, 누구에게도 단역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던 작가의 시선, 그리고 끝내 빈자리를 메워가며 완주한 사람들의 조용한 동지애.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토지》를 펼칠 마음이 생겼다면,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작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혼불》과 《윤동주 평전》을 먼저 읽어두면 좋다. 당대의 풍속과 언어, 일제강점기의 공기를 미리 품고 들어가면 평사리와 간도의 시간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독서가 반드시 혼자만의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떤 책은 혼자 읽을 때보다 함께 읽을 때 더 깊어진다. 어떤 문장은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목소리로 건너갈 때 더 멀리 도착한다. 그리고 어떤 관계는 긴 시간 같은 책을 읽는 동안 전혀 다른 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우리의 낭독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 우리 네 사람은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다시 줌 화면 앞에 모인다. 이번에는 하동 평사리가 아니라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본집 속 후계동 골목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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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함께 건너며 단단해진 목소리들은 이제 또 다른 생의 문장들을 읽어낸다. 새로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익숙한 동지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가오는 주말에도 기꺼이 새벽을 깨울 것이다. 아무튼, 낭독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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