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기다리는 차 안, 나의 ‘자기만의 방’

문어체의 고전을 오늘의 입말로 되돌리는 밤​(음성 포함)

by 허배우 actorheo

얼마 전, 동네의 작은 독립서점에서 열린 낭독회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함께 읽었다. 두 번은 서점에 직접 모여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소리 내어 읽었고, 마지막 세 번째 모임은 줌 화면 너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침내 완독 했다. 눈으로만 따라가던 문장들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타고 공기 중으로 퍼질 때, 그 글은 전혀 다른 생명으로 다가왔다.


https://brunch.co.kr/@actorheo/75


묵독으로 읽을 때는 지나치기 쉬웠던 문장들이, 누군가의 입을 거쳐 나오는 순간 갑자기 또렷해졌다. 활자 속에 가만히 누워 있던 의미가 목소리를 만나자 비로소 제 몸을 얻는 것 같았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소리 내어 읽는 일은 전혀 다른 독서였다. 눈으로 읽는 독서가 이해의 일이라면, 낭독은 몸으로 통과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자기만의 방》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함께 읽는 동안 유독 1장이 가장 난해하고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자꾸만 문장 앞에서 미끄러졌다. 완독을 마친 뒤에도 이상하게 그 첫 장의 답답함이 오래 남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다가,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 책은 원래 버지니아 울프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두 차례의 강연을 바탕으로 엮은 글이라는 것.


생각해 보면 《자기만의 방》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쓰인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번역문은 눈으로 따라가기에 적합한 문어체의 결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번역으로서의 밀도와 품위는 충분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에는 자꾸 호흡이 걸리고 리듬이 끊겼다. 그 지점이 내게 오래 남았다.

그렇다면 이 글을, 강연장에 서 있던 울프의 목소리에 조금 더 가까운 말로 다시 옮겨볼 수는 없을까.


눈으로 읽기 좋게 다듬어진 문장을, 다시 귀로 들어오는 문장으로. 문어체의 고전을 오늘의 입말로. 활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글을 다시 살아 있는 목소리의 리듬으로 되돌리는 일. 그 생각에 닿자 묘한 호기심과 함께, 어쩐지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100년 전 영국에서 여성의 독립과 창작에 대해 말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우아하다. 그 목소리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말로 옮겨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눈으로 읽기 좋은 글과 소리 내어 말하기 좋은 글은 애초에 호흡부터 다르다. 문장은 같은 뜻을 품고 있어도, 읽는 문장과 말하는 문장은 전혀 다른 속도로 몸을 지난다.

희곡을 읽고 번역할 때마다 절감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좋은 문장은 반드시 아름다운 문장과 같지 않다. 적어도 낭독과 대사의 자리에서는 그렇다. 입에 붙는 문장, 숨이 막히지 않는 문장, 감정이 실릴 자리를 남겨두는 문장이어야 한다. 소리 내어 말하는 글에는 의미만이 아니라 박자와 체온이 필요하다.

이번 작업에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었다. 바로 AI와의 협업이다. 똑똑한 조수와 핑퐁 하듯 문장을 주고받으며 초벌 번역의 어색한 문어체를 걷어내고, 숨이 끊기지 않도록 문장을 쪼개고 다듬었다. 어떤 단어는 너무 무겁고, 어떤 문장은 너무 곧아서 말로 옮길 때 힘이 빠졌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지금 우리의 입 안에서 무리 없이 굴러갈 수 있는 표현을 찾아야 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실리도록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하나의 문장을 두고도 “이건 읽는 말인가, 말해지는 말인가”를 자꾸 되묻게 됐다. 번역이라는 일이 뜻을 옮기는 일인 동시에 호흡을 옮기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유난히 또렷하게 느꼈다.

퇴근 후 밤 9시. 낮 동안 켜두었던 직장인의 스위치를 끄고, 온전히 번역가이자 ‘방구석 배우’로 돌아가는 시간. 그 시간은 내게 작은 해방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의 나, 집안일을 해내는 나,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움직이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오직 문장과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 하루를 버텨낸 뒤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밤의 한 귀퉁이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것이 창작을 위한 상징적인 조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며 살아갈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물리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정말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누구의 요구에도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내 생각이 끊기지 않도록 지켜낼 수 있는 자리.

치열하게 조직 생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나에게 과연 ‘자기만의 방’은 어디에 있을까. 책상 하나쯤 놓인 서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뜻한다면 내게 그런 방은 어디에 있는 걸까.


생각보다 그 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다.

가장 애를 먹었던 1장 첫 부분의 번역을 마친 날이었다. 딸아이의 학원 픽업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남아 있었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조용히 녹음 버튼을 눌렀다.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스며드는 어두운 운전석. 시동은 꺼져 있었고, 바깥과는 잠시 단절된 채 차 안에는 내 숨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남아 있었다.


문장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가다 문득 알게 됐다. 어쩌면 내게 ‘자기만의 방’은 바로 이런 곳인지도 모르겠다고.

시동을 끈 채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둔 좁은 차 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틈새의 시간. 완벽하게 고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몇 분 동안만큼은 내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리. 누구를 돌보러 가는 길 위에 있지만, 그 짧은 순간만은 오롯이 나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생각해 보면 내 삶에서 많은 일은 늘 틈에서 이루어졌다. 완전히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 출근과 퇴근 사이, 엄마와 직장인 사이,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사이. 창작도, 번역도, 읽기도, 쓰기도 대개는 그렇게 남는 시간의 형식으로 내게 왔다. 그러니 어쩌면 나의 방 역시 처음부터 커다란 공간일 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문을 닫고 혼자 들어가는 방이 아니라, 바쁜 삶의 틈에서 간신히 확보한 작은 여백. 나는 이제야 그 여백의 형태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날 어두운 차 안을 채우던 울프의 문장들을 떠올린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돈과 방에 대해 말하던 오래된 목소리. 그 목소리를 오늘의 입말로 옮겨 읽는 나의 목소리.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놓인 시간의 두께. 100년이라는 간격이 무색할 만큼, 어떤 문장들은 여전히 지금 우리의 삶에 정확히 가닿는다.

조만간 정성껏 다듬은 이 대본을 들고 낭독 모임 사람들과 다시 입을 맞출 생각이다.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문장은 또 다른 결을 입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나온 목소리, 누군가의 지친 어깨와 기쁜 마음과 오래된 고민을 지나온 숨결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나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혼자 읽을 때는 미처 몰랐던 문장의 결이 함께 읽는 자리에서는 또렷해진다. 책은 언제나 혼자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낭독은 자꾸만 그 반대의 감각을 가르쳐준다. 문장은 사람들 사이를 건너갈 때 더 멀리 가고, 목소리를 입을 때 더 오래 남는다.

어두운 차 안에서 시작된 이 작은 작업이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한복판에서도, 하루의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밤에도, 내 목소리를 잃지 않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절실한 ‘자기만의 방’ 인지도 모른다는 것.

벌써부터 심장 한구석이 기분 좋게 두근거린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장 첫 부분 - 딸아이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낭독]

https://m.blog.naver.com/superb2b/224225362497



#버지니아울프 #자기만의방 #낭독 #워킹맘 #방구석배우 #허배우 #actorheo #아무튼낭독 #직장인 #치유

토요일 연재
이전 03화안동 사투리로 쓰인 편지를 낭독하다 (음성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