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사투리로 쓰인 편지를 낭독하다 (음성 포함)

카페에서 펑펑 울었다 “어무이, 거도 우체국이 있니껴?”

by 허배우 actorheo

출간 준비 중일 때부터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했던 조정 작가님의 신작 《마음》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온라인 서점에 책이 올라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이 이 책을 엮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아 헤매고,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투박한 말들의 흔적을 붙잡기 위해 마음을 쏟았는지 알기에 책을 받자마자 찍어 보낸 인증 사진 한 장에는 축하 이상의 뭉클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펼쳐 든 이 책이 평온하던 나의 오후를 이토록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

어느 오후, 늘 찾는 카페 구석진 곳에 있는 나의 애착 자리에 앉았다. 그날따라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음악 소리가 유난히 컸다. 소음 사이로 흩어지는 활자에 집중하기 위해 나는 문장들을 나직하게 입 밖으로 내어 읽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았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듬어진 '문학'이라기보다, 단 한 사람을 향해 건네는 가장 사적인 마음에 가까웠다. 제주에서 평안도까지, 각자의 고향말로 써 내려간 편지들 속에는 표준어로는 미처 담아내기 어려운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특히 안동의 투박한 입말로 기록된 문장들은 지독하리만치 생생한 구어체로 숨 쉬고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는 숨 쉬듯 익숙하지만 안동 입말은 내게 낯선 영역이었다. 안동을 두 번이나 여행했지만, 정작 그곳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기억은 없다.

돌이켜보면 여행할 때는 늘 눈이 귀보다 더 바빴다. 풍경과 건물, 사진 찍기에 마음을 빼앗긴 사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상상도 해 본다. 관광지 안내문마다 그 지역 사투리와 표준어를 함께 적어 둔다면 어떨까 하고. 낯선 말이 품고 있는 온기를 조금 더 일찍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글자를 눈으로만 쫓을 때는 몰랐는데, 입 밖으로 내어 소리 내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어 내 귓가에 울렸다. 마치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아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레 속마음을 털어놓는 듯한 생생함이었다.

나를 무너뜨린 것은 김윤환 님이 돌아가신 어머니께 안동 입말로 쓴 편지였다. 낭독을 이어가던 내 입술에서 이 문장이 흘러나온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무이, 거도 우체국이 있니껴?”

조정 엮음, 고향말로 쓰인 편지 《마음》, 37~38쪽 낭독

하늘나라에도 우체국이 있다면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 텐데,라는 그 천진하고도 절망적인 물음. 안동 사투리 특유의 억양이 내 목소리를 타고 흐르자, 글은 더 이상 종이 위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를 건너와 내 앞에 선 한 사람의 통곡이었다.

그 그리움은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너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았느냐고, 정작 네 마음속 가장 소중한 이름들을 잊고 산 것은 아니냐고.

결국 카페 한복판에서 흑흑,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다. 다행히 공간을 메운 큰 음악 소리가 나의 울음을 덮어주었고, 구석진 애착 자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숨겨주었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편지가, 오늘을 사는 한 여자의 비밀스러운 울음을 만난 순간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오직 나만이 온전히 마주한 오롯한 정화의 시간이었다.

사회생활 20년 차. 업무에 대한 강박, 버텨야 한다는 오기, 그리고 직장에서의 고단함을 '어른'이라는 가면 뒤에 꾹꾹 눌러 담았던 시간들이 그 생생한 목소리에 반응하며 터져 나왔다.

어른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의 '딸'로서 오롯이 슬퍼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역설적으로 나를 살렸다. 그 눈물은 내 안의 딱딱한 껍데기가 녹아내리는 소리였다.

눈물을 닦고 일어선 카페 밖의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투명하게 느껴졌다. 작가님께 책을 샀다고 사진을 보냈던 그 들뜬 마음은, 이제 책장을 덮으며 깊은 감사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박제된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다가왔던 그 진심이, 이 서툰 목소리를 타고 누군가의 굳어버린 마음에도 작은 틈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카페에서 나는 비로소 다시 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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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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