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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잃고 내일을 얻을 수 없다

by DJ

인생은 결과로만 규정되는 여정이 아닙니다. 하루가 모여 한 사람이 되고, 일상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한 인생의 결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단순한 하루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평온하며 스스로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 작은 행복들은 마침내 삶 전체를 빛나게 하는 토대가 됩니다. 반대로 미래라는 이름 아래 오늘을 끊임없이 희생하고 버티기만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그 불행 역시 쌓여 결국 인생을 잠식하게 됩니다. 불행한 오늘들이 모여 행복한 내일을 만든다는 발상은 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위험한 착각에 빠집니다. 지금의 고통이 미래의 행복으로 전환될 것이라 믿기만 하면 현재의 불행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삶의 흐름 자체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감정과 경험은 시간 속에 고립된 섬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이어지는 연속적인 흐름입니다. 불안과 억압, 희생만으로 채워진 시간은 그 자체로 정신의 습관이 되며, 결국 미래까지도 동일한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성실한 노력과 인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괴로워도 언젠가 행복해지겠지”라는 사고는 현재와 미래를 단절된 두 세계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위험한 환상입니다. 삶은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순간을 무분별한 쾌락으로 채우고, 소비와 자극에 몰두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순간적 즐거움은 행복의 본질을 반영하지 못하며, 일시적 도파민 자극은 언제나 곧바로 허무와 피로를 뒤따르게 합니다. 이른바 ‘도파민 시소’라는 원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극으로 급격히 올라간 즐거움의 감정은 반드시 그만큼의 반동을 요구하고, 흥분이 가라앉은 자리는 공허감이나 무기력함이 대신 채우기 마련입니다. 이런 방식은 행복을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삶일 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일입니다. 어떤 순간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어떤 활동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채우며, 무엇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지를 스스로 명확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내적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작은 행복들을 지켜가는 행위야말로 앞으로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결정짓는 힘이 됩니다. 행복은 번쩍이는 이벤트가 아니라, 아주 작은 일상적 감정의 지속에서 비롯됩니다. 의미 있는 대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 몸과 마음이 안정을 얻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행복의 토대가 됩니다.


미래는 지금의 하루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을 바라면서 오늘을 희생하는 사고는 모순입니다. 오늘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내일 행복을 누릴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현실의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미래의 나만 빛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씨앗을 돌보지 않은 채 풍성한 열매만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풍요로운 내일은 잘 관리된 오늘에서만 자랍니다.


결과만을 바라보며 고통을 당연한 과정으로 미화하는 대신, 지금의 삶 속에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고, 어느 순간 돌아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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