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방학 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요양원에서 몇 주 정도 봉사활동을 했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반납된 책을 원래 위치에 놔두는 쉬운 봉사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업무량이 적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어서 적잖이 무료했었고, 다른 봉사활동에 비해 인기가 많아 매번 신청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인기가 없어 매일 할 수 있는 요양원 봉사활동을 택했다. 어르신들을 돕겠다는 대견한 의도가 아닌, 순전히 봉사활동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실리적인 의도였다.
내가 방문한 요양원은 규모가 작은 요양원이었다. 원룸 건물을 요양원으로 바꾼 듯한 작은 건물이었는데, 2층은 행정실, 간호사실, 환자와 가족들끼리 이야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나머지 층은 2인실 5개와 식사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각 방에 하나씩 있었다. 6인실이 기본인 다른 요양원에 비해 개인의 공간이 많이 확보된 요양원이었다. 각층에는 1명 내지 2명의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2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있었으니 인원도 나름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기대와 달랐다. 일단 어르신들 대부분이 치매 중증 환자이셔서, 애초에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 장소에 움직이기 위해선 요양보호사 선생님 또는 자원봉사자가 항상 동행해야 했다.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관절이 굳고 근육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휠체어에 앉히는 일조차 성인 남자 2명이 필요한 정도였다.
요양원 실내의 풍경은 아름답진 않았다. 화장실은 2인실 구석에 양변기 하나를 두고, 그 주위를 커튼으로 두른 것이 다였다. 커튼을 두른 이유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어르신들을 편히 앉히려면 커튼식 구조가 편했고, 또한 혹시나 방문이 잠겨 곤란해지거나 어르신이 화장실 안에서 넘어지는 등 안전상의 문제를 염려한 것이었다. 안전하긴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매우 부끄러워하셔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6인실에 비하면 2인실은 상당히 쾌적한 공간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공간이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경구기관내삽관을 끼신 어르신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양쪽 팔을 환자용 침대에 묶었고, 그렇지 않은 어르신들은 묶이진 않았지만 마치 묶인 것처럼 침대에 누워 입을 벌린 채 천장을 하염없이 쳐다보셨다. 양팔이 묶인 어르신과 황당한 얼굴로 천장을 보시고 있는 어르신, 그것이 요양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실내의 냄새도 썩 좋진 않았다. 실내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은 덥고 말지만 어르신들은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로 위험하다. 특히 올해 여름은 무더위 중에서도 무더위였는데,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어르신들은 더욱 견디기 힘든 무더위였다. 그래서 냄새가 나더라도 함부로 환기를 했다간 실내의 공기가 더워져 어르신들이 위험할 수 있기에, 한 달 넘게 환기를 하지 못했다. 요양원엔 음식 냄새, 화장실 냄새, 사람들의 체취가 섞여 무엇이라 표현하지 못하는 꿉꿉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 냄새는 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봉사까지 적응하지 못한 유일한 놈이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 냄새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최대한 웃으면서 지냈다. 혹시나 찡그린 표정을 어르신들이 보시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어르신들께 크나큰 마음의 상처가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노력 덕분인지, 한 할머님 분과 친해질 수 있었다. 치매 10년 차 할머니이셨는데, 그분은 내게 자신의 손자보다 더 좋다고 칭찬해 주셨고, 내가 할머님의 식사를 도울 때마다 표정은 없으셨지만 항상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항상 나와 함께 <고향의 봄>동요를 불렀다. (아래에 첨부해놓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가사만 나열해서 그렇지만,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꼭 들어보기를 바란다. 분명히 밝은 노래인데, 이상하게 구슬프다. 나는 이 가사를 보면, 언어 능력을 거의 상실해서 말씀을 제대로 못하시는 그 할머님이 이 노래만큼은 유려하게 부르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다른 할머님들과는 엄청 친해지진 못했지만, 같이 있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5대 여성 아나운서 중 한 명이신 분도 계셨고, 젊었을 적에 배구 선수로 활동하셨던 분도 계셨고, 수십억 대 자산가이셨다가 사기를 당하셔서 몽땅 잃고 그 충격으로 치매가 오신 분도 계셨다.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되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그중 하나는 사람이 객체와 같은 대상에서 의지를 지닌 인격체와 같은 주체로 바뀌는 것이다. 마냥 돌봐야 했던 어르신들이었지만, 사연을 알고 난 뒤로는 나의 손길과 말에 존중이 자연스레 묻어났다. 또한 사람을 소홀히 대할 수 없게 되는 것도 포함한다. 누군가의 사연을 모르면 지나칠 일들이 누군가의 사연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지나칠 수 없다. 치매로 인해 말의 두서가 없고,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시더라도 어르신의 이야기를 그냥 듣고 싶었다. 귀담아듣고, 내가 그분의 조그마한 삶의 이유가 되고 싶었다.
나의 노력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어르신은 나를 오랫동안 보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올 적마다 누구인지 알아보시지 못하기도 하셨고, 경구기관내삽관을 낀 어르신은 나를 볼 때마다 내 등과 팔을 여러 차례 때리셨다. 아쉽고, 서운하고, 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르신의 기억 속에는 내가 없더라도, 어르신의 반복되는 오늘 속에 한두 번 정도는 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이 나를 때리셨던 것은 어르신만의 귀여운 애정 표현이라고 믿는다.
쉽지 않았지만 좋은 기억이 된 요양원 봉사활동에서 내가 줄곧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빛났던 시절이 있든 어두웠던 시절이 있든 세월이 흐르면 결국 늙음이라는 단 하나의 결말로 귀결된다면, 나는 어떤 젊음을 보내어 어떤 늙음에 도달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운동, 건강, 경제력, 인간관계, 지식, 인품 등 많은 것을 갖고 가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지고 갖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데, 그중 하나는 '여유'라고 불리는 재산이다. '여유'를 먼저 가질수록, 사람은 편안해지는 것 같다.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앞서 말한 수많은 개념들이 종합적으로 적정 수준에 이르는 것이 여유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스스로 '여유'를 갖췄다고 인식할 때, 그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긍정'이라는 재산도 가지고 가고 싶다. 난 긍정적인 척을 하는 사람인데, 진심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생각과 그 생각에서 비롯되는 웃음이 참 부러웠다.
어떻게 늙어야 할까, 때 이른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가고 있으니, 지금은 늙었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내가 늙었을 때는 중년에 불과하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노년 인구 비율은 2067년이면 전체 인구 대비 40%에서 50%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자그마치 지금의 2배 정도이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의 노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OECD 최상위이다. 그때가 되면, 슬프지만 늙음의 격차는 지금보다 커질 것 같다. 대비를 잘 한 사람과 잘하지 못한 사람의 격차를 그때 가서 좁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젊은 사람과 젊어 본 사람의 격차도 그때 가서 좁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요양원 봉사활동은 그 격차를 좁히는 데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젊어본 사람의 곁에 가본 것, 젊어본 사람의 현실과 입장을 바라본 것은 내겐 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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