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광명역 웨딩홀에서 결혼하는 신혼부부를 보고 추억에 잠기다.
어머니가 해주신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번 주말 김장을 하기 위해 다시 올라와야 해서 간단한 인사를 드리고 광명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광명으로 가는 버스의 도착 예정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분명 내 앱 속 도착시간은 10분인데... 어느 것이 맞을까? 하고 기다리려는데 이틀 연속으로 마신 술로 인해 뱃속에서 폭풍 같은 쓰나미가 소식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정류장의 시간대로라면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고 앱의 시간대로라면 버스를 이번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를 타면 기차 시간이 약간 촉박하게 된다. 고민을 했으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밀려드는 쓰나미의 고통으로 인해 우선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폭풍 같은 시간을 잘 마무리한 후 버스정류장에 돌아와 보니... 앱 속 도착 시간이 맞았는지 버스는 이미 가고 다음 도착시간이 다시 30분으로 늘어 있었다.
무리해서 버스를 타고 가다 봉변을 당하는 것보다는 다행이라는 혼자 위안은 가지며 다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 사람이 제법 많이 있었다. 다행히 고속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기차 출발 전 넉넉하게 도착을 해서 커피를 한잔 구매 후 지하 1층 플랫폼에서 잠시 기다리려고 의자에 앉았다.
광명역 지하 1층에는 웨딩홀이 있다. 일요일이라 오늘 그곳에서 결혼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양한 하객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 눈을 돌리다 보니 눈앞으로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들러리의 부축을 받으며 식장으로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쁘게 차려입고 이쁜 화장을 한 새 신부의 모습을 보니 잠시 옛 추억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와이프를 만난 지 31년 결혼을 한지는 27년,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우리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주례를 맡으신 주임 신부님께서 꼬마신랑, 꼬마신부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함박웃음을 짓던 때가 벌써 27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꼬마신랑, 꼬마신부가 50대 초반이 되어 조만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세월이 지났다. 첫사랑으로 만나 결혼까지 한 그렇게 30년 전을 함께 한 우리 부부의 옛 모습을 떠올리려 해봐도 솔직히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집 한편에 있던 커다란 결혼사진도 장롱 속 이불 뒤 축축한 그늘 속에 감춰져 있고 웨딩 촬영 앨범도 장롱 저 위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 떠오르며 이번 주말에는 한번 꺼내서 쌓였던 먼지를 닦아내고 와이프와 추억에 잠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추억에 잠겨있는 사이 열차 도착 방송이 들렸다.
내가 타려는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을 듣고 타는 곳으로 내려가는 도중 그 신부의 뒤를 따라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이 보였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싱글벙글이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피곤한 오전에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해 준 예비 신부와 신랑에게 비록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었다.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ktx도 역시 사람이 많다. 미리 예매한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끼고 책을 펼쳤다. 오래전 읽었던 책중 'ping'이란 책을 다시 꺼내 읽기로 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와이프는 오전에 볼링 상주전에 팀원으로 참석해서 현재 볼링을 치는 중이라 동대구역에서 와이프가 있는 볼링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이동을 했다.
동대구역 광장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커다란 이정표가 우뚝 서 있었다. '박정희 광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광장 이정표였다.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하고 생각을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대구시장과 시민단체들 간의 다툼이 많이 있는 이슈로 뉴스에 자주 나왔었는데 결국 현 대구시장이 뜻을 굽히지 않고 동상까지 설치를 하려는 것 같다. 정치에 관해 어지간하면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지만 서로 다툼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욱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