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26일째, 건조한 대지와 산을 적셔줄 빗방울을 만들고 있는 하늘이 잔뜩 찌푸린 모습으로 나를 깨우는 아침이었다. 빗방울을 만드는 것이 힘든 지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의 입김이 강한 바람을 불어내고 있었다.
도울 수만 있다면 바람 없이 비를 만드는데 내 손길을 얹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창가에서 하늘에 내 바램을 전해주었다.
제목: 목련꽃 낙화
너 내게서 떠나는 날
꽃이 피는 날이었으면 좋겠네
꽃 가운데에서도 목련꽃
하늘과 땅 위세 새하얀 꽃등
봄날이었으면 좋겠네
너 내게서 떠나는 날
나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
잘 갔다 오라고 다녀오라고
하루치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가볍게 손 흔들듯 그렇게
떠나보냈으면 좋겠네
그렇다 해도 정말
마음속에서는 너도 모르게
꽃이 지고 있겠지
새하얀 목련꽃 흐득흐득
울음 삼키듯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앉겠지.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명상을 마치고 조용히 일기를 정리한 뒤, 며칠 전부터 느껴진 오른쪽 귀 아래와 목 중간쯤에 자리한 작은 혹 하나가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무시해도 될 정도의 불편함이라 생각했다. 이런 건 대부분 며칠 지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이 낯선 돌출 하나가 점점 신경이 쓰였다. 통증이 없고 커지지 않는 다고 해도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상함이 오래되면 그건 의심이 된다. 결국 오늘은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오전 9시에 문을 연다는 이비인후과에 서둘러 도착했건만, 이미 대기자 명단에는 28개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 숫자 앞에 29번 숫자 뒤에 이름을 적으며 그냥 다시 돌아갈까 하는 망설임이 잠시 스쳤지만 돌아설 수는 없었다.
집 인근의 병원이라 명단을 적고 일단 집으로 돌아오늘 길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짜증이라는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우울이라는 단어보다는 ‘억울함’에 가까운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나를 잘 돌보며 살고 있는데, 왜 하필 이런 불편이 내게 찾아온 걸까. 몸은 분명 예전보다 가벼워졌고 건강해졌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오늘따라 무거웠다. 술도 끊고 체중도 조절하고 정말 성실한 체력관리를 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
거기에다 절대로 열지 말아야 할 문, ‘네이버 검색’이라는 의사의 탈을 쓴 늑대들의 의견을 보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상상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누구나 알고 있다. 네이버 검색은 병을 낫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을 키운다. 불과 얼마 전, 일기에 어깨통증때 다시는 검색은 안하기로 다짐해 놓고서는 결국 난 또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던데 이런 순간은 예외인 듯 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은 죄다 보고 싶지 않은 단어들 뿐이었다. 후두암, 갑상선암, 림프종, 임파선암이라는 단어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아니 그런 단어들 만 보였던 것 같다.
책 한권을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9시 20분쯤 도착해서 확인을 해보니 약 1시간 20분가량 대기를 해야 한다. 휴게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오늘 읽은 새로 펼친 책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얼마전 인문학 필독서에서 군중심리와 함께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되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 짧은 진찰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게추를 발목에 달고 걷는 느낌이었다.
의사의 진단은 임파선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일단 약 2주가량 약을 먹고도 혹이 가라앉지 않으면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사를 맞고 3일치 약을 처방 받고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물론 큰 병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쉽게 통제되지도 않는 다는 것을 오늘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름대로 책을 읽으며 감정을 조절하는 법에 대한 글도 써왔다. 그래서 이제는 강한 멘탈을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 나를 보게 되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난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작 나 스스로에게 작은 위기감이 밀려오니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고 있는 나 한테 이런 불안한 징조가 몸에 나타난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이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5월의 바람이 아니라 1월의 살을 에우는 바람으로 밀려들어 오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검진 결과를 묻는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일단 지켜보자고 한다고 말하고 서재로 들어왔다. 잠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이 감정을 지금 추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호흡을 다시 했다. 조금씩 짜증과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눈을 뜨고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이런 감정을 이겨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페달을 밝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높은 강도로 땀을 배출해냈다. 눈을 영상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은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나갔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운동을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어느새 마음속에 있던 불안과 분노는 사라져있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인 마인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혹을 만져보니 좀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2주간 지켜보자고 했고 이제 작은 혹하나 생긴 것 뿐이데 뭔 걱정을 그리하느냐라고 생각하니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주사 한 대 맞은 것 말고는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내 생각만 바뀌었을 뿐.
순간 오전에 내 속의 불안과 걱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지배’라는 단어에 대해 글을 쓴 것이 생각났다. 블로그에 접속하여 내가 작성한 글을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 난 아침부터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글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지나가는 생각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오늘 운동으로 그 감정을 만들어 냈고 분노가 지배하기 전에 나를 조율할 수 있었다.
운동으로 마음을 다잡은 오후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창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그토록 바라던 비였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나의 기도가 닿았는지 하늘이 마침내 대지 위로 빗줄기를 내려주었다. 그제야 어딘가 막혀 있던 감정도 조금은 순해지는 기분이었다.
책상에 앉아 읽고 있던 책의 문장을 정리하고 아내와 나란히 외출 준비를 마쳤다.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참석하는 볼링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의 걱정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지금은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로 했다.
볼링장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이 반갑게 다가왔다. 아내는 볼링을 치고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벼운 웃음과 유쾌한 농담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감정을 회복하고 이웃들의 글에 공감과 댓글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임을 마치고 빗속을 가르며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정리했다. 오늘 하루는 꽤 긴 여정이었다. 불안에서 운동으로, 운동에서 웃음으로, 웃음에서 다시 조용한 고요함으로.
여러 감정이 지나간 하루였지만 결국 나는 오늘도 나를 무사히 통과해냈다. 그래서 더 감사한 하루였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내일 아침, 문득 거울 앞에서 손을 뻗었을 때 느닷없는 목의 그 불청객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작아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