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주인없는 공간속에 홀로 남겨진 작은 몸의 하울링

by 마부자


금주 134일째, 늦게 온 5월의 봄은 마치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선 사람이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듯 오늘은 제 모습을 꺼내 보였다.


아침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웠고 그 안엔 봄의 포근함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고 말하는 듯한 공기의 느낌이었다.


제목: 멀리서 빈다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안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나 한 살마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시작했다. 늘 그렇듯 책상에 앉아, 공감과 댓글로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독서를 시작하려는 순간, 아침 공기를 가르며 들려온 한 줄기의 소리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퇴사 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욱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웃 어딘가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는 반려견의 울음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순간적인 외로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나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노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달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조금 달랐다. 매일 같은 시간. 출근 시간이 지난 후부터 하루 종일 반복되는 길고 낮은 울음은 더 이상 일시적인 외침이 아니었다.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울부짖는 하울링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짙은 소음의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혼자 있는 강아지의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방치라는 이름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고통처럼 느껴졌다.


반려동물을 혼자 집에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살아야 하고, 그 삶의 무게 속에서 반려동물 역시 함께 버티고 있는 존재니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아닐까.


사람은 흔히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 아침에 밥을 주고, 장난감을 챙겨주고, 자동 급식기를 설치해두면 다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게 정말 반려동물을 위한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삶을 유지하는 데 방해받지 않기 위한 편의였는지를 묻게 된다.


하루 종일 비어 있는 집, 그 안에서 반복되는 울음소리는 단지 외로움의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던지는 외침 또는 물음 일지도 모른다.


"혼자 둘거면 왜 날 데려왔나요. 그냥 나와 함께 사는 것이 편한 건가요?"


반려라는 단어가 말하는 것은 함께 걸어가는 삶이다. 돌봄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여야 한다. 완벽한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이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 어쩌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전체인구의 약 25%에 이른다고 한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방치 그리고 책임의 무게가 존재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쉽지만 그 사랑을 지속하는 일은 어렵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삶 전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단순히 먹이를 주고 산책을 시키는 것을 넘어선다.


그들의 외로움과 불안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려동물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면 무엇을 더 해야 진짜 '함께 사는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


먼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또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데려오는 장난감이 아닌 가족이 생긴다는 책임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이 '책임'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귀엽다고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외로움마저 함께 감당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매일의 삶에 말 못하는 존재를 담을 여유가 있는지 퇴근이 늦은 밤에도 산책 한 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장기 외출 시 맡길 수 있는 돌봄 시스템, 아파트 내 소음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중재 기구 등 제도적 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은 사적 영역의 존재이지만 그 삶의 결과는 늘 공적인 문제로 번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반려동물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일 아닐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단지 함께 하는 인간들이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늦은 오후까지 계속된 생명체의 울부짖음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짙은 회색처럼 깔리는 그 소리에 하루의 감정과 집중 모든 것이 서서히 잠식되었다.


나는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다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죄의식을 느꼈다. 외면하는 것 같았다. 들려오는 고통을 애써 듣지 않으려는 나의 선택은 정당한 방어였지만 동시에 작은 회피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웃의 반려견도 고통 속에서 울고 있었지만 나도 내 감정도 함께 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이어폰 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그 하울링은 계속 울렸고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 소리를 피했다.


운동을 쉬기로 한 오늘도 조금 더 독서에 시간을 들이기로 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천천히 읽어가며 서평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이어졌던 하울링은 아내가 퇴근한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멈췄다. 그 순간은 마치 하루 종일 흐리던 날이 갑자기 고요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에게 이 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이미 어느 집인지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소리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가끔은 조용한 날도 있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반복되는 걸 보니 주인이 계속 집을 비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출장이나 장기 외출을 나간 날엔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낸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그 집 안에서의 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인이 없는 공간속에 홀로 남겨진 작은 몸 하나. 외로움이 공간 전체를 잠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오늘 읽은 책보다도 훨씬 더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단순한 애완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한 부분으로 살아낸다. 때로는 아이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그 존재로 인해 삶의 균형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 가진 보살핌의 본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함께 살아가며 사랑을 나누는 일, 그것은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순한 형태의 애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의 하울링이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이례적인 고통이었기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고 그런 극단적인 예가 모든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반려인들은 묵묵히 책임감 있게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분노나 냉소가 아닌 평정심의 시선으로 이 감정들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오늘 내가 일기장에 남겨야 할 가장 솔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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