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전 독서를 마치고 커튼을 열자 창밖에서 밀려든 초여름 햇살이 책상 위를 덮었다. 한낮의 햇빛은 더 이상 봄의 따스함이 아니었다. 이제는 뺨을 찌르는 듯한 따가움으로 다가왔다.


창문을 열자 풍선 속 공기가 부풀 듯 방 안으로 밀려든 바람이 그나마 선선하게 균형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서늘한 공기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한 주 만에 다시 오른 페달 위에서 나는 에번 카마이클의 <침대 부수기>라는 책을 눈과 귀로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반복해서 되새긴 문장이 하나 있었다.


“고민하는 시간은 두려움만 키울 뿐이다.

즉각적인 행동만이 답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행동 너머에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방법’이 아니라 ‘이유’에 집중한다.

어떤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명확하면

방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어떤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강렬하면

미지의 영역도 두렵지 않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이유.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흔히 ‘방법’을 찾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절차로 접근할 것인가. 효율적이고 정확한 길을 찾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늘 불확실성의 벽 앞에서 흔들린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떤 매뉴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유’는 방향이고 동력이다. 그것은 머리로 계산된 목표가 아니라 가슴으로 감각되는 중심이다. 이유는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나는 문득 몇 가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진심으로 간절했던 목표는 대체로 이유가 명확한 것이었다.


아내의 건강, 중국으로의 발령, 낯선 대구로 이사, 아버지로부터의 해방 등 내 안의 결핍을 증명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방법을 몰라도 시작을 하였고, 시작한 후엔 길이 생겼다. 그 반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가 흐릿했던 일은 얼마 가지 않아 동력을 잃었고 방법은 결국 핑계로 변했다.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망설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 보지 않으면, 우리는 늘 ‘방법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다.


결국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이유’라는 단어는 흔하게 쓰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말에 설득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그 말의 바탕에 ‘이유’가 깔려 있어야 한다.


어떤 행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결국 이유가 필요하다. 삶의 동력이란 결국 이유의 유무에 따라 생기거나 사라진다.


반대로 말하면 이유가 희미해지면 나도 희미해진다.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선택이 모두 허공을 향해 흩어지는 느낌이 들 때면 결국 나는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렸다는 증거다.


이유는 방향이자 에너지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유, 지금 이 선택을 하는 이유. 그 이유가 분명할수록 나는 덜 흔들린다.


설령 결과가 내 예상과 다르더라도 후회는 적다. 왜냐하면 그 길을 걷게 만든 이유가 내 안에서 충분히 동의되었기 때문이다.


페달을 밟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요즘 내가 반복하는 행동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이 루틴들. 이 모든 일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고 회복에 대한 책임이었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우물을 벗어나려는 한 마리 개구리의 몸짓이었다.


내가 이 일들을 왜 하는지를 잊는 순간, 이 일들은 버티기 위한 일이 되거나 자책의 도구가 된다. 이유는 나를 지탱하는 내면의 뼈대 같은 것이다.


그것이 분명해질수록 나는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의식할 때마다 다시 불을 지핀다. 그러므로 나는 방법보다 이유에 집중하기로 했다. 방법은 바뀔 수 있지만 이유는 나를 통과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습관과 루틴이 ‘이유 없음’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운동, 독서, 글쓰기 같은 행위들은 처음엔 분명한 이유와 동기로 시작된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든 어떤 결핍이나 열망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행위가 일상화되면 우리는 종종 그 이유를 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하는 거지.”


많은 자기계발서와 강연도 “일단 시작하라”는 말로 이유보다 행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절반만 맞다.


시작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시작을 반복 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삶의 중심으로 삼게 만드는 것은 이유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유’와 오늘 내가 책 속에서 마주한 ‘이유’는 다르다. 전자는 습관의 명분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후자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내면의 나침반같은 것이다.


무엇을 하든 ‘그냥’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무력화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반복하는 일상 안에서도 끊임없이 왜 이걸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끝으로 책속에서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해 이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한다.


“살아갈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든 해낼 수 있다.”


나는 오늘 ‘이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유는 있어도 그만인 장식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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