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순한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되었다.
숨을 천천히 고르며 명상을 시작했다. 이제는 오직 하나, 그 하나를 내가 늘 기도하는 그들에게 할 뿐이다. 신, 우주, 영혼들에게 간절히 그리고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다.
존 소포릭이 말했다. “고요속에서는 내면의 지혜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간절히 원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언제나 답을 보내온다.” 난 며칠전부터 정말 간절한 답을 원하고 있다.
명상을 마치고 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과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순간 나 스스로를 다잡는 방법 뿐 아무것도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제목: 겨울 행
열 살에 아름답던 노을이
마흔 살 되어 또다시 아름답다
호젓함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걸 알게 되리라
들판 위에
추운 나무와 집들의 마을,
마을 위헤 산,
산 위에 하늘,
죽은 자들은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언 별빛이 되지만
산 자들은 마을로 가
따뜻한 등불이 되는 걸 보리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그리고 지난 주말 아이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잠시 회상을 해보았다.
그제 오후, 포항에서 둘째가 올라왔다. 함께 저녁을 먹고, 딸에게도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라고 했다. 작년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로, 우리가 이렇게 모두 둘러앉은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기쁘고 따뜻한 소식을 나눠야 마땅한 자리였지만, 나는 마음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를 품고 있었다. 꺼내놓아야 할 말은, 슬픈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건, 되도록이면 감추고 싶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으니까.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채 지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단단하게 나를 다잡았다.
이제는 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약해진다면, 그건 단지 나 하나의 병이 아니라, 이 네 사람 모두에게 전이되는 감정의 병이 될 거라는 걸. 그러니 덤덤하게 말해야 했다.
조금은 태연한 얼굴로, 치료 가능한 병이라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웃으며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아빠가 암일 수도 있대.”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땐,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이 참 길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가라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었다. 그리고 웃으니, 조금씩 공간의 온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온기가 돌았다.
나는 말했다.
“너희는 우울해하지 마라. 아빠가 이렇게 웃고 있는데, 너희까지 어두워지면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긴다. 그러니 너희는 좋은 생각만 해라. 아빠가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그 마음만 보태줘.”
사실은, 나도 무섭다. 하지만 그 무서움을 감추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품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지금, 나는 이 시간을 사랑의 자리로 기억하고 싶다.
오늘 아침 두 사람이 현관을 나서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정식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먼 곳까지 가버렸다. 의사의 구두 소견만 듣고도 나는 얼떨결에 '암 관련 까페'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마주하게 될 단어, 편도암. 그 단어와 일단 친해지기로 했다. 무서운 말이지만, 이제는 일상 언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편도암은 생각보다 흔한 암이 아니었다.
흡연이나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HPV 바이러스 감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평생 담배 한 번 피우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도 이 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에, 왠지 억울한 기분도 조금 들었다.
까페에 내 상태를 글로 올리자,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환자 본인이거나, 그 가족이거나, 이미 이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이 참 따뜻했다.
"지방 병원은 편도암 케이스 자체가 많지 않아요. 서울로 전원하는 게 좋아요."
"조직검사 결과와 CT, 초음파까지 준비해서 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어요."
"빅5병원에 먼저 예약하세요. 조금 기다리더라도요."
솔직히 처음엔 막막했다. 서울의 대형병원(세브란스, 서울대, 서울아산, 삼성서울, 가톨릭서울대) 이름만 들어도 숨이 찼다.
의료대란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 인맥도 없고 줄도 없는 내가 그 병원에 예약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일단 해보세요”라는 말이 등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신기하게도, 하늘이 도운 건지 몇몇 병원에서는 진료 예약이 가능했다. 가장 빠른 일정은 6월 9일.
그 병원에는 이번 주 안으로 나올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바로 진료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소식 하나만으로, 마음이 조금 환해졌다. 용기도 났다. 그래서 다른 병원들에도 전화를 걸어 추가로 두 군데를 더 예약했다. 일정도 그리 멀지 않았다. 나름 선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때, 전화 한 통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병이 이미 절반쯤 나은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했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어제는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는데, 오늘 겨우 진료 예약이 잡혔다는 이유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그렇게 아주 작고 사소한 희망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예약을 마치고 난 뒤, 나는 까페에 남겨진 후기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 편도암은 예후가 좋은 편에 속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료를 잘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물론 그 앞에 붙은 단어는 여전히 무겁다.
암. 아무리 예후가 좋다 해도, 암은 암이었다. 대부분 8개월에서 길어야 1년 남짓의 치료 기간을 거쳐야 했고, 항암과 방사선, 수술을 병행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이 병도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이 병은 편도와 식도 부위를 다루기 때문에 치료가 시작되면 음식을 제대로 먹기 어려워지고, 자연스럽게 체중이 10kg에서 많게는 20kg까지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일부러 살을 찌워야 한다고, 가능한 한 많이 먹고 체력을 비축하라고 했다. 심지어 소고기를 하루에 한 번은 먹으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 말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직은 아무런 통증도, 증상도 없는 이 상태에서 고기를 잔뜩 먹으라는 조언은,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래, 체력이 기본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부지런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해왔던 1일 1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식단을 준비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어두자고. 운동은 잠시 쉬기로 했다.
그 대신 저녁에는 짧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걷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지금 나는 무사하다.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요즘 들어 자주 깨닫게 된다.
입맛이 있을 때 먹고,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웃을 수 있을 때 웃는 것.
그 단순한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