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는 아침의 소음이 눈을 뜨게 했다. 새벽도, 그렇다고 완연한 아침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었다. 웅성거림의 근원을 따라 창가로 다가서니, 주차장 아래쪽으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 이 집을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하루를 이곳에서 시작하려는 준비 중이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얼굴, 이름은 알지 못한 채 짧게 나눴던 눈빛과 어색한 인사가 전부였던 사이. 그 사람의 마지막 하루가 오늘이라는 걸, 창밖 풍경을 통해서야 알게 된다.
제목: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그렇게 우리는 모르는 이와도 작은 인연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어떤 인연은 짧고 조용히 스쳐가고, 어떤 인연은 오래도록 남아 마음에 자리를 틀기도 한다.
이삿짐이 실려 나가는 풍경을 보며 문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의 자리는 고정되지 않는다.
한 번도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같은 건물 안에 함께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조금은 쓸쓸한 이별처럼 느껴진다. 인연이란 이름은 늘 그렇게, 조용하고 담담하게 우리 곁을 지나간다.
오늘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달력 속 날짜는 늘 그렇듯 평범하게 흘러가지만, 오늘은 단순한 하루가 아니다.
지난 6개월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단정지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작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된 그날로부터 정확히 반년이 흐른 시점이다.
그날 새벽, 모든 것이 느닷없이 닥쳐왔다. 예고 없이 떨어진 비상계엄은 한순간에 우리의 일상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고, 공포와 혼란은 들이닥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누구의 지시도 없이,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국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절박하고도 굳센 의지는 결국 역사의 방향을 다시 돌려놓았다.
우리는 두려움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냈다. 그리고 싸웠다.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준비의 시간 속에서 대한민국은 반으로 갈라졌고, 그 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거센 눈보라와 빗줄기 속에서, 차가운 거리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붙들고 울었고, 희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견디는 일, 그 자체가 희망의 시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두려움의 근원을 뿌리째 드러내고, 단호한 결단으로 수술을 감행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뛰어난 집도의 손길 아래 무사히 수술은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은 재활의 시간이다. 아직 회복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생존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회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지만, 동시에 단단해지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나는 믿는다.
이 긴 시련의 끝자락에 서 있는 오늘,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시작은 반드시 희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 희망은 오래도록 지속되리라.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볼링장으로 향했다. 선거일이라 모두가 하루 쉼을 얻은 덕분에 평소보다 두 시간은 일찍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고, 볼링을 마친 뒤에는 저녁을 함께 하고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담담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오늘은 평소와 다른 결이 느껴졌다.
요즘 내 어깨 통증으로 인해 볼링을 잠시 쉬고 있는 것을 두고, 지인들은 조심스레 언제쯤 다시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총무라는 자리를 맡고 있는 만큼, 대회나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결국 내 상태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모두는 놀랐고, 안타까움과 진심 어린 위로가 오갔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의외로 내 주변에도 병을 마주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가족이나 지인이 암을 겪고 이겨낸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정확한 진단만 되면 요즘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담담한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게 쌓인 말들은 모두가 건네는 작고 조용한 응원의 방식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태연한 미소와 가벼운 말투 속에서, 무거운 걱정 하나씩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그들 앞에서,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진심으로 내 안의 단단한 믿음을 나누고 싶었다.
반드시 치유될 것이라는 다짐, 그리고 아픈 시간을 피하지 않고 모임에 나와 여전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의 이 자리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작지만 의미 있는 ‘존재의 확인’처럼 느껴졌다. 위로를 주고받는 방식이 꼭 말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걸,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와 무심히 TV를 켰다. 화면 아래로 ‘당선 확실’이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 울리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오늘 하루의 마지막을 대신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지난 6개월간의 숨 가빴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희망을 품었고,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도 방향을 찾으려 애썼던 날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은 결국 투표로, 이 지난한 시간의 결말을 스스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제, 상처 입은 대한민국을 돌봐 줄 주치의가 결정되었다.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라는 작은 세계에 내려진 판정은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세계의 선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누구이든, 그 손끝에서 시작될 치유가 통증을 덜어내고, 무너진 균형을 조금씩 되돌려주기를 바란다. 현재 겪고 있는 혼란과 불안을 다시 잡아주는 시간들이 이제부터 이어질 것이다.
후유증 없이, 재발 없이, 나 자신도, 대한민국도 안심하고 다시 걷게 되는 길. 그 길의 시작점에 오늘이 놓여 있다.
오늘이라는 날은 단지 달력 위의 하루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방향을 돌린 첫 번째 발걸음이다.
늦은 밤,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해본다. 이토록 오랜 시간 아파왔던 대한민국처럼, 나의 몸도 알게 모르게 긴 세월 무리와 침묵 속에 조용히 망가져 왔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는, 내 몸 또한 회복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공포보다는 신뢰로, 분열보다는 연대로.
대한민국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손을 잡고 재생되듯, 나라는 세계도 조금씩 회복되기를 오늘이라는 날이, 내일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