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8.그 순간 모두가 날개 달린
천사처럼 보였다.

by 마부자

아침 일찍 딸과 함께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기차 좌석이 없어 따로 떨어져 앉았고, 두 시간 남짓한 이동 내내 창밖 풍경은 빠르게 지나쳤지만, 마음은 그 어떤 장면도 붙잡지 못했다.


걱정을 덜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 읽었지만, 활자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켠이 더 무거워졌다.


수서역에 도착해 병원 셔틀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길게 늘어선 정류장의 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여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부터 병원을 가기 위해 본인 또는 가족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올라온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늘 그렇듯 각자의 사연을 짊어진 얼굴들로 붐볐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치는 사람들속에는 표정도 다르고 걸음도 달랐지만, 그 안엔 하나같이 ‘두려움’이 있었다. 그 속에 나와 딸도 있었다.


다행히 셔틀버스가 자주 와서 그리 길지 않은 대기를 하고 병원에 도착을 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미 병원안에는 더 많은 사연의 주인공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접수를 마치고 검사실 앞에서 딸에게 점심을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 후, 나는 PET CT검사를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투명한 액체가 동맥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 차가운 감각 무언가가 혈관으로 타고 들어오는 느낌과 살짝 어지러운 감정이 들었다.


약 1시간 동안 약품이 혈액을 통해 순환되는 시간을 대기실에 누워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든다. 물론 현재 몸상태로 봐서는 전이는 없겠지만 하는 생각이 더 우세하지만, 한편으로 밀려드는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는 없다.


한 시간의 대기 끝에 검사가 시작되었다. 30여 분의 정적. 숨소리조차 신경이 쓰일 만큼의 고요한 시간이었다.검사가 끝난 뒤 다음 진료 예약은 2시 20분이었다.


약 한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어, 병원 외부의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다행히 병원 옆에 식당가가 있어 우리는 돈까스 전문점의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았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그렇게 딸과 함께 낯선 서울의 거리 어딘가에서 우린 점심을 해결했다. 정갈하게 나온 음식에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실 그 맛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점심을 마치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이 시간이 가장 길다. 마음은 고요하면서도 온통 소음으로 가득 찬 마음. 그러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다른 환자들과 가족들의 대화 소리.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마다 귀가 열리고, 내 이름이 불릴 때 까지의 기다림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담당의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아주 미세한 낯빛과 말투. 그런 사소한 것에 온 감각을 곤두세우며 결과를 들었다.


“다행히 다른 곳의 전이는 없습니다. 일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암은 치료예후가 워낙 좋고 우리 선생님께서 비 흡연자에 금주 중이시고 아직 젊으셔서 굉장히 완치율이 높은 경우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물었다. “그럼 제가 지금 몇기 정도 되는 건가요?”


의사는 말했다. “편도암은 병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발현되고 찾아오면 상당한 전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최소 3기부터 시작됩니다. 바이러스성 감염인 양성인지 아니면 악성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난 다시 물었다. “그럼 저도 3기가 넘었다는 말씀인가요?”


의사는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현재 환자분은 양성암, 비흡연, 림프절 이외의 다른 전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악성암과는 달라서 몇기라고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2기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도 없으며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럴일은 거의 없겠지만 수술을 하게 된다면 자신이 직접 수술해서 완치 시킬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요.”


눈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그 말을 전달하는 담당의사의 그 한 문장에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의외로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단순함이 주는 안도는 생각보다 컸다.


그 순간, 담당의도, 옆에 앉아 있던 딸도, 문 밖의 간호사도 모두 등 뒤로 커다란 날개를 단 천사처럼 보였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감정은 뚜렷했다. 감사했고, 조금 울컥했다.


이후 오후 4시 방사선종양학과 담당의와 함께 향후 치료계획과 과정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주 5회 한번에 약 30분정도 소요되며, 치료의 부작용 그리고 예상되는 통증등을 설명듣는 순간에는 다시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치료 일정은 7월 2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하루 한 번씩 6주간 약 30분간 반복되는 치료.


그리고 그 과정을 나 혼자가 아닌, 담당의와 방사선과, 핵의학 담당의까지 세 명의 의료진이 함께 관리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단단해졌다.


담당의에게 대구에서 올라온 점을 고려하여 요양병원을 구하기 위한 추천서를 받아 건물내에 위치한 파트너즈 센터로 이동을 했다. 그 곳에서 요양병원 몇군데를 추천 받고, 요양병원 입원에 도움이 될 진료기록을 복사해주었다.


병원을 나서며 수서역으로 가기위해 셔틀 버스에 올랐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훨씬 덜 흔들렸다. 역에 도착해 이른 저녁겸 간식으로 달달한 도넛으로 딸과 해결을 했다.


기차에 올라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의 하루를 천천히 정리했다. 딸은 내 옆에서 휴대폰을 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고, 아내는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내와 내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내겐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를, 나는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구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졌고, 검은 하늘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긴 하루였다. 하루종일 병원에서 보낸 하루는 일주일의 고단함과 피곤의 감정을 몰고 온다.


집에 도착해 아내와 딸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딸은 내일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트를 누르고 기다리는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저 말뿐이지만, 하루종일 고생한 딸에게 아빠가 전해주고 싶은 가장 깊은 고마움 그리고 감사함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바라면서.


지금 이순간 내일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내가 나를 지켜내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무거운 날이었지만, 결론은 의외로 가볍다.

완벽한 계획이 수립된 이 순간,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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