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두려움을 무릎 꿇게 할
작고 단단한 실천들

by 마부자

새벽부터 창밖이 어수선했다. 반가운 소리였다. 며칠간의 비로 잦아들었던 새들의 지저귐이 오랜만에 다시 들려온 아침.


한때는 소음처럼 들리던 그 소리가, 지금은 어쩐지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그렇게, 잠시 멀어져 있어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베란다 창가에 서서 초여름 새벽 바람을 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명상에 들어가며 오늘도 간절한 하나의 바람을 마음속에 되뇐다.


“간절히 원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언제나 답을 보내준다.”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에서 읽었던 문장이다.


제목: 나무에게 말을 걸다

우리가 과연
만나기나 했던 것일까?

서로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가진 것을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보일 듯 말 듯
나무가 몸을 비튼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엔 여전히 ‘기적’을 믿는 아이 같은 믿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현관을 나섰고, 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지켜온 간헐적 단식은 지금 내게 맞지 않는다.


치료를 위한 새로운 루틴은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됐다. 삶은 달걀 두 개, 두유 한 팩, 통밀빵 한 조각, 그리고 토마토 몇 조각.


오랜 단식 습관 탓에 처음엔 속이 더부룩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조용한 포만감이 하루를 안정시켜준다.


체중계에 올라섰다. 숫자는 70kg을 나타냈다. 3주 전, 65kg까지 조절했던 몸무게는 내겐 한때의 목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잃어야 했던 걸 힘겹게 얻었고, 이제는 다시 그 무게를 되돌려야 하는 시점이다. 처음엔 억울했다.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몸무게라는 건 단지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나를 살리기 위한 의지와 과정이 함께 담겨 있다.


목표는 최소 75kg. 가능하다면 80kg까지. 물론 무작정 불리듯 살을 찌울 수는 없다.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당으로 억지로 체중을 늘리는 건 오히려 해롭다.


예전 체중 감량할 때처럼 이번에도 천천히, 규칙적으로, 몸의 리듬을 존중하며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루틴으로 점점 자리를 잡아가며 늘려야 한다.


오전엔 책을 읽었고, 오후엔 간단한 운동과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점심은 현미밥에 생선 혹은 고기, 나물과 김치로 챙겨 먹는다.


간식으론 견과류를 챙기고, 중간중간 물도 잊지 않고 마셨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단단해지고 있다.


내일은 서울에서 PET CT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 암 환자에게 있어 병기 확인과 전이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검사 중 하나이다.


현재 나의 상태 즉, 그동안 많이 들어 알고 있는 그 몇 기가 결정되는 날이다. 이 검사를 해야만 모든 치료에 대한 일정이 정해질 수 있다. 요양병원 입원 절차부터.


딸이 직장에 연차를 내고 동행해주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고맙다. 딸을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오늘 저녁은 특별히 챙기기로 했다.


메뉴는 육회와 돼지갈비, 그리고 쟁반국수. 딸을 위한 것, 아내를 위한 것, 그리고 오늘 하루를 위로할 나를 위한 것.

고기와 채소, 국수와 과일을 준비하며 나는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다시금 느꼈다.


딸과 아내가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엔 오래간만의 웃음과 수다가 가득했고, 식사 후엔 과일을 나누며 내일의 일정을 천천히 상의했다.


요양병원 문제, 치료 계획, 마음의 준비. 무겁지 않게, 그러나 섬세하게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하루를 조용히 정리하는 이 시간.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그 두려움을 무릎 꿇게 할 작고 단단한 실천들이 오늘도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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