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여섯 시간의 링거. 병실이라는 낯선 시간의 틈에 나는 책 한 권을 손으로 읽고 또 다른 책 한 권을 귀로 들었다.
오늘의 책은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의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게 가장 깊이 파고든 문장은 이렇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결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고통과 비참함, 무력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부터 연상한다.
그러나 결핍은 무기력이 아니라 동력이다.
결핍은 고통이 아니다.
결핍은 도약이자 기회의 터널인 것이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결핍.
결핍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내 안에서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부족함, 비어 있음, 결여된 상태.
결핍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결핍 그 자체보다 그것이 불러오는 불안과 무력감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 이 책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그 단어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핍은 단지 무언가가 없는 상태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은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는 시작점이다. 채워지지 않았다는 인식은 곧 그것을 향해 행동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러므로 결핍은 욕망의 출발선이다. 그 안에는 내가 여전히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고 그것은 내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핍은 방향을 잃은 나를 다시 나아가게 만들고 의지를 다듬게 한다. 때로는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다시 중심을 잡게 하며 지금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결핍은 일종의 습관처럼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결국 결핍은 단순히 결여의 상태가 아니다. 도리어 '있기 위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내면의 자극이다. 나는 이 자극을 통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계획하며 다시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다시'의 움직임이 삶을 앞으로 이끈다. 결핍은 그렇게 우리 안에 어떤 가능성의 문을 여는 조용한 힘으로 작동한다.
나는 지금 조용히 찾아온 어둠의 존재로 인해 많은 것들을 제약 받는다. 체력도 일상도 내가 원하던 방식의 삶도 일시적으로 멀어져 있다.
하지만 그 상태가 바로 내가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만든다. 이전의 내가 채워졌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좁은 시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차린다.
결핍이란 우리가 가진 것의 진짜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결핍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걷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저자들의 말은 우리가 그동안 결핍이란 가졌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어쩌면 인간은 결핍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자각하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득 찬 순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워졌을 때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 빈틈이 고요히 말을 건넬 때, 우리는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다음을 준비하게 된다. 결핍은 그러므로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준비다. 다가올 가능성을 향한 침묵의 몸짓이다.
고통이 아닌 기회로서의 결핍. 그 속에는 스스로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여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여백의 한복판에 있다.
아직은 아프고 아직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바라고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면, 나는 결핍을 통해 내 삶을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오늘 ‘결핍’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결핍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있기 위해 움직이게 하는 자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