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비가 그친 창밖, 바람은 마치 늦가을처럼 선선했고 나는 그 바람에 이끌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북쪽 산에서 흘러 들어온 공기가 서재를 지나 거실을 타고 베란다를 통과할 때쯤, 몸 안에 맴도는 눅눅한 무언가가 걷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바람은 내 안의 감정을 먼저 건드렸다. 그것은 머리보다도 빠르게 반응한 몸의 반응이었다.

영상 속 문장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못 느낄 뿐,
몸은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몸은 감정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보다 먼저 아픈 것은 몸입니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감정.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물리적인 것이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지금 몸이 보내는 신호를 매일의 삶 속에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익숙한 표현이지만 그보다 먼저 아픈 건 몸이라는 문장은 처음엔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감정이 몸을 아프게 만든다는 말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말은 틀리지 않다. 우리가 아프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이미 우리 몸은 먼저 반응을 시작한 뒤다.


가슴이 조이거나 숨이 가빠오고 식욕이 떨어지고 잠을 설치는 그 모든 신호들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발신한 메시지다.


그르므로 몸이 아플 때 그 원인을 감정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혈관, 근육, 세포 그러니까 내 몸안에 모든 흔적을 남긴다.


감정이란 억지로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시할수록 몸 깊숙이 숨어들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곧 몸을 돌본다는 말과 같다.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스스로의 몸을 속이는 일이며 그렇게 누적된 감정의 무게는 결국 병이 되어 돌아온다.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은 몸을 잘 돌보는 사람이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은 건강에 솔직한 사람이다.


우리는 감정을 너무 쉽게 기분이나 정서 같은 말로 가볍게 다루지만 사실 감정은 뇌와 장기와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 고도의 시스템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감정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억울함을 느낄 때는 참자고 말했고 두려울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또한 슬플 때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기쁠 때마저 너무 티 내지 말자고 조심했다. 그렇게 감정이 정리된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말해준다. 이제는 감정을 묻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듣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


그 감정은 몸의 한 구석에서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숨이 차다는 말로 때로는 입맛이 없다는 말로 때로는 이유 모를 무기력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며 억누르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해석하지도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몸이 보낸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일이야 말로 진짜 자기 돌봄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과정을 거치면 결국 감정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신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신호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몸이었다. 그러니 감정을 잘 안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잘 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오늘 ‘감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감정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몸에게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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