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동안 집안의 일과를 마친 후, 창밖에서 밀려든 초여름 햇살과 방 안에 들어온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의 결은 다름 아닌 늦가을이었다. 따스한 햇빛과는 전혀 다른 계절이 창밖에서 불어왔다.
햇살과 바람이 서로 다른 계절을 말하고 있는 듯한 이중적인 풍경은, 요즘 나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겉으론 평온하지만 그 속은 변화와 혼란이 일렁이고 있었다.
오늘 귀로 들은 책은 김승호 작가의 <얼굴이 바뀌면 좋은 운이 온다>였다. 그중에서 유독 이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운명을 미리 알 수 있을까?
운명이란 앞으로 전개될 시간의 흐름이다.
앞으로 그렇게 흘러가 도달할 테니
미래는 곧 운명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반대로 과거는 이미 확정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두고 역사라고 표현한다.
단히 말해 미래는 운명이고 과거는 역사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운명.
약 3개월간 하와이 대저택에서 영상으로 책들을 만나며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다. 마치 운명처럼.
그런데 그 운명이란 단어에 대해 정작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월~금요일 오후 12시 30분이면 올리던 글이었다.
그러나 다음주 월요일부터 입원을 하게 되면 잠시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내 의지는 계속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치료일정과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니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순간의 생각에 집중하려 마음 먹고 선택한 영상에서 마치 운명처럼 그 단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수도 없이 생각해온 단어이건만 정작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다 마주친 이 짧은 문장은 내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나는 과연 운명을 어떤 개념으로 살아왔는가.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삶은 마치 운명처럼 전개되어왔다. 18살, 운명처럼 첫사랑을 만나 결혼했고 그녀와 함께 세 아이를 낳아 키웠다.
24살에는 아무 계획 없이 발을 들인 회사에서 28년을 보냈다. 작년 11월, 그 회사를 떠날 때도 내게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때로는 선택할 수 없었던 흐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운명이란 말을 수용의 언어로 사용해왔다. 마치,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떤 흐름처럼.
그러나 지난 겨울, 뇌출혈로 아내가 쓰러졌을 때 운명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그것은 온몸을 긴장시키는 공포였고, 이성의 숨을 끊어놓는 절망이었다.
언제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이것이 우리에게 예정된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내는 기적처럼 아무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내 안의 질문이 솟아올랐다. 과연 운명이란 확정된 미래일까?
김승호 작가는 운명이 미래이고 역사는 과거라 했다. 그렇다면 아내의 뇌출혈은 ‘운명’이었다가 이제는 ‘역사’가 된 셈이다.
그러한 정의에 동의한다면, 지금 나에게 찾아온 병 역시 언젠가는 역사로 바뀔 것이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살고 있는 중이고,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보며 역사를 쓸 것이다.
운명은 변하지 않는 예정된 경로가 아니라 내가 걸어간 길을 통해 완성되는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나는, 운명이라는 이름에 화가 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지금 이 시기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 걸까. 그런 질문이 떠오르며 나는 운명을 원망하게 된다.
내 몸에 들어앉은 암이라는 존재를 운명이라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운명이란 단어는 질문을 끝내는 말이 아니라 질문을 시작하게 하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 병을 통해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묻고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살아온 길을 ‘운명’이라 말했지만, 이제는 살아갈 길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고 있다. 그것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삶이다.
내가 아내의 회복에서 배운 것도 그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라도, 그 끝은 예정된 미래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결과라는 사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게 찾아온 병이라는 운명을, 내가 만들어갈 새로운 역사로 바꾸기 위해 오늘도 준비하고 있다. 식사를 챙기고 운동을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를 산다.
치료가 시작되면 견뎌야 할 시간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지나고 나면 하나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운명이란 결국 시간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운명이라 부르고, 지나간 시간은 역사라 부른다. 그리고 그 시간의 내용은, 내가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오늘 ‘운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