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 병원내의 시설에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오전 일찍 방사선 치료와 독서를 마치고 평소 집에서의 루틴대로 몸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약간의 운동을 시작했고 한권이 책을 다시 만났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의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실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실수가 곧 비극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실수.
실수라는 단어는 내게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살아오며 실수는 늘 예기치 않게 찾아왔고 어떤 실수는 곧잘 후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병원이라는 이 낯선 공간에 누워 있는 것도 과거의 어느 실수들의 누적된 결과일지 모른다.
건강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던 일, 무시했던 증상들, 무심했던 생활습관,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단지 나의 탓이라며 자책하기엔 실수라는 단어는 너무 인간적이다.
실수는 곧 잘못이라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실은 그것이 반드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실수는 잘못이 아닌 한계의 증거다. 그러니 실수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보다는 그 실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었다. 실수를 통해 삶의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실수를 두려워했다. 실수는 곧 나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이 찾아오고 나서 삶은 실수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반복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내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매일 구강관리 루틴을 지키는 것도 운동을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속하는 것도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한 작은 시스템 설계다.
의사나 간호사도 실수를 한다. 가족도 나도 마찬가지다. 실수는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전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수 이후의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 고치려는 노력, 다시 시작하려는 용기, 이것이 우리가 실수로부터 구해지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를 학습의 기회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수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경계를 알게 되고 그 경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된다.
마치 수술대에 오르기 전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철저히 분석하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듯 우리도 삶의 시스템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나는 병을 통해 나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그 허술함은 실수의 반복이었다. 불규칙한 생활, 피로를 참고 견디려는 태도, 건강검진을 미뤘던 일들.
그러나 그 실수들이 모두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병실에서 나는 다시 설계하고 있다. 더 나은 나를 위한 시스템과 결핍을 회복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스템을.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수는 때때로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후회는 남는다. 하지만 후회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실수를 발판으로 삼아야만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코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없이 돌아보고 다시 걷고 때론 멈추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완성되어간다.
나는 오늘 ‘실수’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실수는 인간됨의 흔적이며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삶의 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