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이른 아침 병원을 나서며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아직 잠에서 덜 깬 거리의 공기였다. 입원병동의 복잡한 공기와는 전혀 다른 질감이었다.


한낮의 열기나 저녁의 피곤함이 개입되기 전, 순도 높은 공기였다. 그 공기를 마시며 삼성병원의 거대한 로비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각자의 명찰을 단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다시 저들처럼 일상의 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들처럼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방사선 치료를 마친 뒤 오전 9시 의사의 진료 상담이 예약되어 있었다. 약 50여 분이 남아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한 권의 책을 영상으로 만났다.


오늘의 영상은 싸이먼 스킵의 <왓츠 유어 드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멈춰 세운 한 문장을 만났다.


끈기는 바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힘이자 조건이다.

성공은 재능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끈기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자신안에 있는 끈기를 믿지 않거나
아예 꺼내 보려 하지도 않는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끈기.

끈기라는 단어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 단어는 그동안 내게 지나치게 근면하고 고지식한 단어였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하는 어딘지 애처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끈기는 멈추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끝을 보겠다는 의지였다.


그 의지는 단순히 오래 버티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이유를 기억하는 기억력과도 닮아 있었다. 나는 지금 병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은 생각보다 어둡고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끈기는 내가 만든 작은 빛이다. 아무도 그 빛을 대신 밝혀주지 않는다. 어떤 날은 그 빛조차 흔들린다. 나도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 길의 끝이 정말 회복일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지금 멈춘다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끈기란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반복해서 내는 과정이다. 매일 아침 치료를 마치고 독서와 짧은 글을 쓰는 이 루틴은 겉보기에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작은 변화는 내가 어떤 감정을 거치고 어떤 생각으로 오늘을 통과했는지 말해준다. 끈기는 이 작은 기록들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많은 순간은 거창한 전환보다 묵묵한 반복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큰 결심보다도 작지만 멈추지 않은 행동들이 결국 방향을 바꾸었다.


나도 그랬다. 병을 알았을 때 처음엔 두려움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려움을 기록하고 고통을 감지하며 치료를 견디는 이 시간이 결국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끈기는 버티는 것이 아니다. 끈기는 스스로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는 외부의 소음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저자 싸이먼 스킵은 말한다. “세상의 기준이 그만두라고 속삭일 때 보이지 않는 것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 자기만의 눈이 바로 끈기를 가능하게 한다.


나는 오늘 ‘끈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끈기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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