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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Jan 03. 2025

<독서>최진영 작가의 산문집
"어떤 비밀"

그녀의 480절기의 인생 경험을 통해 작가의 삶을 조금 알게 되었다.

책 읽은 계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를 물들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저 독서를 하던 중에 스며든 작은 욕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서, 글로써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책들은 나를 충분히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허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득 멈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깊이 고민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고, 책을 출간하거나 대단한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 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했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일기를 조금 더 공감 가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것. 내 일상을 글로 공유하며 이웃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런 글을 쓰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문득 돌아보니, 에세이 장르의 책을 고작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꿈꾸는 공감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체감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은 아닐까…


그때부터 였을까.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내 망상 활성화 체계(RAS)가 작동한 것처럼 에세이 책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서 이웃님이 추천한 두 권의 에세이도 마침 그 순간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책처럼 보였다. 망설임 없이 바구니에 담았고, 새해 세 번째 책으로 『어떤 비밀』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을 펼치며 나는 조심스럽게 기대했습니다. 이 책이, 나의 사소하고도 평범한 비밀 같은 일상을 글로 담아내는 데 작지만 확실한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기를.




줄거리&요약

이 책은 24절기를 기준으로 총 24통의 편지를 독자들에게 작성하며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 편지에서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시작은 봄을 알리는 경칩으로, 자연이 움트는 순간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다음,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절기를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마지막은 겨울의 끝자락을 상징하는 우수에서 마무리됩니다. 이 24절기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장치가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삶과 감정을 풀어내는 배경이자 도구로 사용됩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유년 시절 가족들 과의 추억과 작가로서의 성찰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정 등을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필체로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편지는 연애편지 같으며 일기는 소설 같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두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으로 작가의 20년을 이야기합니다.



나의 서평 및 감상

51년을 살아온 지금까지, 24절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스쳤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어떤 비밀>을 읽으며, 마치 24통의 손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계절이 바뀌고, 그 속에서 작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경칩의 설렘, 한로의 고요함, 소만의 여유. 나는 그동안 이런 절기가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매일을 바쁘게 지나치며 계절의 이름을 흘려보낸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하나의 절기에 하나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세밀하고도 진솔한 묘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20년 동안 기록해온 일기의 산물이 아닐까 하고요.

하루하루를 성실히 기록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일기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녀의 삶과 추억이 담긴 시간의 도서관이었을 것입니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그 1년이 스무 번 쌓인 시간. 그렇게 지나온 480번의 절기들 속에는 작가가 느낀 기쁨과 슬픔, 사색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일기들이 없었다면, 이 산문집은 과연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단순한 기억만으로는 이토록 세밀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엮어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녀의 일기들은 단순히 개인의 기록을 넘어, 작가로서 그녀의 감각을 날카롭게 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 원천이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녀가 지나온 480번의 절기들을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청명에서 느꼈던 슬픔, 망종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사유, 한로에서의 사랑에 대한 성찰까지. 절기마다 그녀의 시간이 깃들어 있었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쌓여 빚어진 이야기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탄생한 그녀만의 언어. *『어떤 비밀』*은 단순한 산문집이 아니라, 작가의 세월과 사유가 응축된 한 권의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에게도 그녀처럼 쌓아둔 시간이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 역시 나만의 시간과 기억을 어떻게 다듬고 지켜나갈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최진영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과 내면으로 대화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가 아니라, 마치 주인공들의 감정을 깊이 느끼고 함께 고민하는 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녀의 글 속에서 주인공들은 단순히 창조된 허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성폭력 문제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은 그녀가 가진 강렬한 문제의식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단지 개인의 아픔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피해자를 둘러싼 사회의 침묵과 방관, 그리고 이로 인해 더 깊어지는 상처를 차분하면서도 강렬하게 풀어냅니다.

그녀는 아마 소설을 쓰는 내내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주인공은 그저 한 명의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려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 것입니다.

작가는 24절기를 삶과 연결하여 이야기하는 관점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절기가 변할 때마다 자연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에 반영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위로를 얻고, 자신을 발견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지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게 되고, 자연과 삶이 가진 유기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가의 시선은 단순히 자연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감정과 삶의 이야기로 변환하며, 그 속에서 위로와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최진영 작가의 <어떤 비밀>은 이러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이자, 그녀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녀의 글은 슬프지만, 그 슬픔은 세상과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자,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나를 위한 편지였는지도 모릅니다. 51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를 이제야 들려주는 작가의 배려 같은 것.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새로운 감사와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한 계절이 끝나고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도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놓쳤던 계절들, 그리고 잊고 지냈던 나의 마음들. <어떤 비밀>은 그것들을 다시금 나에게 돌려준 책이었습니다. 절기마다 담긴 작가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앞으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를 다시 자연 속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문득 달력을 보았습니다. 1월 5일. 일요일이 소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무심히 넘겨오던 하루였는데, 이제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것도 이 책을 읽은 후 내게 찾아온 작은 변화라는 것을요.

24절기를 따라 쓰일 나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조용히 한 해를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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