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4.엄마의 생일, 흔들리던 막내의 눈동

by 마부자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생일 아침의 핵심은 결국 미역국이다.


결혼 생활을 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미역국은 정성이 아니라 타이밍의 음식이라는 것.


젊었을 때는 생일 아침에 부랴부랴 끓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년간의 실험과 실패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미역국은 전날 저녁에 한 번 끓여두고 아침에 다시 끓여야 진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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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한 번 데워져야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어제 오후 마트에 들러 미역, 소고기, 마늘등의 재료를 준비해 1차로 국을 끓여 놓았다.


미역국을 끓이며 마치 국가 기밀 문서를 처리하는 공무원처럼 엄숙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일 아침은 내가 책임진다’는 정도의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 새벽의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책 속의 문장들을 따라가며 몇 줄의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주방에서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번 끓여둔 미역국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약하게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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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내와 막내를 깨웠다.

“생일 축하해.”


아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웃었고, 막내는 아직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셋이서 이른 아침을 함께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막내는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얼굴은 여전히 고등학생 같은데,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아내는 출근을 하고, 막내는 학교로 가는 길. 같은 방향으로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다정해 보였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려갔다. 책을 덮고 나서는 바로 서평을 쓰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이 가까워질 즈음 막내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은 자신이 쏘겠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놀랐다. 사람이 성장하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쏠게요”라는 말을 할 때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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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말 뒤에는 늘 현실이라는 것이 따라온다.


메뉴를 묻는 질문에 아내는 주저없이 회를 선택했다. 물론 막내는 “회 먹으러 가시죠”는 말을 꺼내면서도 자신의 지갑 사정을 동시에 계산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횟집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묘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가족이다. 막 대학생이 된 신입생의 지갑을 털어 거창한 일식집에 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집 근처 도매시장처럼 운영하는 횟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격도 현실적이고 양도 넉넉하다.


무엇보다 부모의 양심이 편안한 장소다.


이쯤 되면 딸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어제 딸에게 연락이 왔다.


기침과 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A형 독감 판정을 받았고, 5일간 격리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생일에는 함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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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시대의 효도는 꼭 물리적으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첫째와 둘째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통장으로 표현했다. 아주 현대적인 방식의 효도였다.


아내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같이 못 있어도 충분히 기쁘고 흐뭇한 생일이야.”


나는 그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생일이라는 것은 결국 케이크의 크기나 식당의 가격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내는 계산을 마친 뒤 괜히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카드 결제 문자를 확인하는 그의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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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에는 분명히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다음 달까지 라면과 함께 살아야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다.

엄마의 생일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것은 늘 같은 자리에 모여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식탁에 앉아 있고, 누군가는 집에서 쉬고 있고, 또 누군가는 화면 너머 단톡방에서 마음을 건넨다.


서로의 자리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 마음들이 한 방향으로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생일은 충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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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내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합니다.

책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오늘의 책 덕분에 초심을 다시 되찾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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