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를 그린 자연을 사랑한 화가
흔히 초상화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초상화의 범주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의 하나인 ‘모나리자’는 당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 부인인 리사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를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의 주인공이나 중요한 인물을 그리던 고대와 중세의 화풍을 넘어서 개인적인 초상화가 보편화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작업을 위한 많은 ‘후원’ 이 필요하였기에 그림의 대상은 이처럼 재력가들의 의뢰에 집중되곤 하였다.
하지만, 아카데믹 화풍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초상화의 대상 역시 무명에 가까운 화가의 지인들로 소환되는 경우가 많았다. 스카겐 학파로 유명한 P.S. 크뢰이어의 페르소나인 아내 ‘마리 크뢰이어’나 같은 그림 공동체의 미카엘 피터 앙케가 자주 그린 그 아내 ‘안나 앙케’처럼 화가의 가족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외로움을 덜어주던 우체부 ‘조셉 룰랭’와 그 아내 ‘오귀스틴 룰랭’은 반 고흐가 그린 인물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폴 세잔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정원사 ‘발리에(Vallier)’ 의 그림을 그렸다.
폴 세잔은 평생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은 화가이다. 부유한 은행가 출신인 아버지 ‘루이 오퀴스트 세잔(Louis Auguste Cezanne)’은 엑상프로방스 지방의 넓은 땅과 저택 ’자 드 부팡(Jas de Bouffan)‘ 을 구입하고 연못과 오랑주리 온실이 있는 커다란 정원을 조성하였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그곳에 작은 작업실을 얻은 세잔은 자 드 부팡의 집과 정원, 밤나무로 이뤄진 진입로 등을 그려냈다. 특히, 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던 것으로 유명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연작 역시 아버지에게 고용된 정원사들과 농장 일꾼들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비록,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 드 부팡의 집을 팔면서 그의 초기작들을 불태우는 바람에 자 드 부팡을 그린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 엑상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산과 비붸미 채석장의 풍경에 사로잡혀 인상주의와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자연을 분석하고 그려냈던 것을 보면 자 드 부팡의 자연과 정원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을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예술적 목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연은 나에게 가장 많은 문제를 가지고 나타난다. 폴 세잔‘
자 드 부팡을 매각한 후, 세잔은 엑상프로방스 위쪽의 ’ 로브(Lauves)’ 지역의 땅을 구입하여 자신만의 작업실을 지었다. 그는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비롯한 과일나무들을 돌보기 위해 정원사 발리에를 고용하였고, 발리에는 노년의 세잔을 보살피는 가까운 친구의 역할도 하였다. 화가는 레 로브의 시간 동안 ‘생트 빅투아르산(Mont Saint-Victoire)’ 이나 ’목욕하는 사람들(Les Grandes Baigneuses)’ 와 같은 걸작들을 완성하였고, 정원사 발리에를 그린 6개의 연작 ’앉아 있는 사람(Seated Man)’, ‘정원사 발리에(Vallier)’ 등을 그리기도 하였다. 특히, 화가가 마지막 순간 폐렴으로 힘들어하던 중에도 발리에의 초상화 작업에 끝까지 매달린 일화는 정원사를 향한 그의 애정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정원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필연적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찰나의 자연 풍경을 담으려 긴 여행을 떠나곤 했던 화가들로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과 구도를 재현한 작은 자연, 정원은 매우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없다. 대표적인 정원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말년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모네의 정원’을 조성하기 전, 아르장퇴유에서 지내던 넉넉하지 않은 시절에도 정원사를 고용하여 집을 가꾸곤 하였다. 정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어렸을 때 지내던 목사관의 정원을 가꾸고 그린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 정원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역시 정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34세까지 모든 전시를 마치고 정원일에 몰두했다고 하며, ‘카미유 피사로’가 자주 그린 에라니의 정원 풍경은 그곳에서 일하는 정원사와 정원에서 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여러 버전으로 보이고 있다.
정원사 발리에를 그린 그림은 폴 세잔의 화풍을 생각하자면 조금 낯설다. 인상주의풍의 다양한 색감과 모더니스트들의 단순한 형태까지 그는 발리에의 초상을 위해 다양한 구도와 기법을 사용한 듯하다. 큼직한 붓놀림으로 실루엣을 표현한 프레임에 여러 색상의 붓질을 더하는 것으로 정원사의 표정을 읽어내기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에서는 대상에 대한 화가의 집요한 탐구를 읽어낼 수 있다. 어쩌면 점점 쇠약해지는 건강상태로 인해 더욱 작품에 매달리는 그의 불안한 심리가 그대로 표현되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하늘 일 없이 노망에 빠지느니 차라리 그림을 그리다가 죽을것이다” 라고 다짐한 그였지만, 동시에 “자연의 이해를 그림의 형식과 표현을 다듬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늙어가는 내 몸으로부터 방해받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 라고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걸작을 향한 화가의 심리적 본질을 ‘질 플라지’의 글이 보다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잔은 지금 발리에르를 그리고 있다. 그는 나무들이 성당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의 모습을 띠어야 하는 대작에 더 이상 개의치 않는다. 이제 동일한 장면 속에 담긴 여러 육체의 움직임과 구태여 조화를 이루고자 하지도 않는다. 미래의 영광도, 푸생도, 모세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발리에르를 그릴뿐이다. 정원사 발리에르가 아니라 인생의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벗어버린 본질적인 어떤 발리에르를, 정원에, 빛과 이파리들 속에 앉아 있는 한 인간을 그릴뿐이다. [……] 그는 발리에르를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릴 때처럼 그린다. – 『 CÉZANNE: 폴 세잔느』(질 플라지, 김용민 역, 열화당, 1993) p. 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