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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지 않는 것들의 지도 _ 1편 : 강

흐르지 않은 흐름에 대한 기록

by 덕배킴

강은 흐른 적이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 뿐, 강은 단지 흐를 예정의

표면일 뿐이다.


물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압력,

흐름보다 먼저 태어나는 것은 방향의 체온.


강바닥 아래,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시간들이

돌처럼 눌린 채 숨을 삼킨다.


흐르지 않는 쪽으로 흐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만 이동할 수 있는 방식.

물결이 아니라 물결 직전의 긴장만 존재하는 세계.


사람들은 그것을 정지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걸 도착 이전의 충실한 자세라고 부른다.


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각도를 오래 견딜 뿐.


강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 뒤로 밀려나며 강을 믿게 되는 것.


나는 오늘도 흐르지 않는 강 위에 서서,

흐르지 않음으로 흐르는 법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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