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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하는 시간

나의 작은 흔적이 결국 나를 만든다

by 이연화 Mar 25. 2025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나 여가 활동 그 이상이다. 유화 그림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색을 입히고 캔버스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풀어내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삶의 복잡한 일들에 휘말려 때로는 내 감정이나 생각을 놓칠 때가 많았다. 그림을 그리며 내면을 돌아보고,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저 붓을 들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유화의 물감을 캔버스에 쌓아가며, 그 과정 자체가 나를 힐링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유화 그림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그것이 나만의 자유로움뿐만 아니라, 기법과 기술을 배우는 중요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나에게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학습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기법을 배우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내 그림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 그림 그리기의 주된 시간은 오전이다. 오전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날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붓을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 병원 스케줄과 다른 업무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리며 ‘마감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나는 그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붓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미세먼지로 가득 찬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는 것처럼, 내 마음속도 점점 정리가 되었다.

유화 그림은 그 특성상 물감이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나에게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고, 그림을 그리며 내 감정이 차근차근 정리되어 갔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내 그림이 내 하루를 닮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그림을 마무리하며 그 그림 속에 떠오르는 밝은 태양을 보면서, 마치 아침을 맞이하는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그림은 단순히 색과 형태를 이루는 그림이 아니라, 나의 하루와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그 그림이 단순히 나의 표현을 넘어서, 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림을 그린 후, 나는 항상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붓을 세척통에 담긴 기름에 세척하고, 물감 팔레트를 닦으며 모든 도구들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이 시간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림을 그린 후의 정리와 마무리 과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작업을 넘어서, 내가 그 일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내 마음을 다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는다.


오늘,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작은 문제도 있었다. 내 손톱에 물감 자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비누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았고, 주방세제를 사용해 겨우 지웠지만 손톱에 남은 물감 자국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신경이 쓰였다. 깨끗하게 씻어야만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자국이 점점 신경이 덜 쓰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 물감 자국이 나에게는 의미 있는 ‘흔적’처럼 다가왔다. 내 손에 묻은 물감은, 내가 그 그림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물감 자국이 나의 하루를 기념하는 작은 흔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국을 보며 ‘작은 흔적이 결국 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남긴 물감 자국은 그날의 나의 노력과 시간을 증명하는 기록이었다. 비록 손톱에 남은 물감 자국은 보기 좋지 않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내가 해낸 일, 내가 걸어온 시간을 증명해 주는 작은 기념비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 물감 자국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되었다. 나는 그 물감 자국을 보며 오늘의 그림을 마쳤다. 그리고 그 자국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흔적, 내가 일구어낸 작은 아름다움이었다.


내 손톱에 묻은 물감 자국은 내가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작은 흔적처럼, 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내 손톱에 묻은 물감 자국처럼, 나는 매일매일 나의 작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작은 흔적들이 결국 내가 살아온 길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내일도, 나는 나의 흔적을 하나씩 쌓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그림 #흔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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