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역사의 폭풍 속에서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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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10월 23일,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보로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현대 서정시에서의 중요한 업적과, 러시아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한 작품"을 그 이유로 들었다. 파스테르나크는 즉각 감사 전보를 보냈다. "한없이 감사하고, 감동적이며, 자랑스럽고, 놀랍고, 압도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소련 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화부는 노벨상 위원회에 항의했고, 소련 작가동맹은 긴급 총회를 소집하여 파스테르나크를 제명하기로 결의했다. 『프라우다』는 그를 "문학적 잡초"라 불렀고, 『이즈베스티야』는 "유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전국의 공장과 대학에서는 그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는데,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집회 참가자 중 다수는 그 소설을 읽은 적조차 없었다. 파스테르나크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도 등을 돌렸다. 그는 고립 속에서 흐루쇼프에게 편지를 썼다. "조국을 떠나는 것은 나에게 죽음과 같습니다." 그 편지는 절망적인 동시에 단호했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10월 29일, 그는 노벨상 수상을 공식 거부하는 전보를 스톡홀름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뒤인 1960년 5월 30일,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근교 페레델키노에서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그가 10년 넘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한 소설 한 편이 그의 생애 마지막을 이토록 비극적으로 물들였다. 그 소설이 바로 『닥터 지바고』다.


이 작품이 어째서 소련 체제의 심장을 겨눈 비수처럼 여겨졌는지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정치적 맥락만을 살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파스테르나크가 무엇을 쓰려 했는지, 그 내면의 의도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표면적으로 『닥터 지바고』는 1905년 혁명부터 러시아 혁명과 내전, 그리고 스탈린 공포정치까지 반세기에 걸친 격동을 배경으로 한 장대한 대하소설이다.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는 고아 출신으로 모스크바의 유복한 지식인 가정에서 자란 의사이자 시인이다. 그는 아내 토냐에 대한 성실한 사랑과, 연인 라라에 대한 불꽃 같은 열정 사이에서 찢기며, 동시에 혁명의 이상과 그 이상이 야기하는 폭력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이 서사의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는 훨씬 더 근원적인 물음이 응축되어 있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지워버리는 역사 앞에서, 인간의 영혼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내면적 삶은 그 어떤 이념적 폭력도 끝내 말살할 수 없는 것인가. 파스테르나크는 이 소설에서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려 했다. 바로 그 "그렇다"가 소련 체제에는 용납할 수 없는 선언이었다.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가 태어난 것은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에서였다. 그의 집안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삽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집에는 레프 톨스토이가 드나들었고,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이 거실에서 연주했으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편지를 보내왔다. 어린 보리스는 이 환경 속에서 음악에 먼저 빠져들었다. 그는 십대 시절 스크랴빈을 작곡가로서의 우상으로 삼고, 6년간 작곡과 피아노를 연마했다. 그러나 절대음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는 음악을 포기했다. 그 결단은 고통스러웠지만, 훗날 그는 그 고통이 자신을 시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그는 다시 독일 마르부르크로 건너가 신칸트학파 철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그의 운명은 언어에 있었다. 1914년 첫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자리』를 출판했을 때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러시아 시단은 이 젊은 목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마야코프스키와 츠베타예바 같은 동시대 시인들이 그의 재능을 경탄했고, 1922년의 시집 『나의 누이, 삶』은 20세기 러시아 시의 걸작으로 지금도 꼽힌다.


그러나 스탈린이 권력을 공고히 한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파스테르나크의 문학적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소련의 문화 정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유일한 창작 방법론으로 강제하기 시작했다. 예술은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해야 했고,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서정시는 부르주아적 퇴폐로 간주되었다. 파스테르나크는 공개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아래 새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고, 대신 셰익스피어—『햄릿』, 『오셀로』, 『로미오와 줄리엣』—와 괴테의 『파우스트』, 실러의 희곡들을 번역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 번역들은 탁월했다. 파스테르나크의 『햄릿』 번역은 오늘날에도 러시아어 번역의 정전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에게 번역은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이었다. 그것은 공식 이데올로기의 손이 닿지 않는 내면의 공간에서, 위대한 인류의 정신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번역 작업들은 그에게 소설을 쓰기 위한 언어적, 사유적 근육을 길러주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던 해, 파스테르나크는 마침내 오래 품어온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진짜 산문을 쓰고 싶다. 우리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집필은 험난하고 길었다. 1945년에 시작된 원고는 1955년에야 완성되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파스테르나크는 여러 차례 원고를 고치고, 등장인물을 바꾸고, 서사의 축을 조정했다. 그의 연인 올가 이빈스카야—훗날 라라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는 1949년 국가보안부(MGB)에 체포되어 4년간 강제수용소에서 복역했다. 파스테르나크 본인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당국은 그를 압박하기 위해 그녀를 잡아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완성된 원고를 소련 출판사들에 제출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원고를 검토한 『노비 미르』의 편집진은 긴 거절 편지를 보내며, 이 소설이 혁명을 배반하고 인텔리겐치아의 이기적 개인주의를 미화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는 굽히지 않았다. 1956년,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출판업자 잔기아코모 펠트리넬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파스테르나크는 그에게 원고를 건넸다. "당신이 이 원고를 출판해도 나는 총살당할 것이오. 하지만 원고는 당신 손에서 출판되어야 합니다." 소련 당국은 펠트리넬리에게 원고를 돌려보내라는 압박을 가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1957년 11월, 『닥터 지바고』는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어로 세상에 나왔다. 그 후 1년도 안 되어 18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이 소설을 둘러싼 정치적 풍경의 한 켜를 더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이 서방 세계에서 반소련 프로파간다로 활용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4년 기밀 해제된 CIA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이 소설을 냉전의 이념적 무기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CIA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비밀리에 러시아어판을 인쇄했고, 1958년 벨기에 브뤼셀 세계박람회에서 소련 방문객들에게 배포했다. CIA의 한 내부 메모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책은 소련 독자들에게 읽힐 때 최대의 선전 효과를 발휘한다." 이 사실은 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다. 파스테르나크 자신은 분명 이런 방식의 이용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소련을 증오한 적이 없었고, 서방을 이상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련 당국이 이 소설을 그토록 두려워했기에, 서방의 정보기관이 이 소설을 그토록 유용하게 썼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얼마나 깊고 날카로운 무언가를 담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진정한 예술은 이념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닥터 지바고』는 어느 편의 프로파간다로도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그 무엇을 품고 있다.


그 "무엇"을 이해하는 열쇠는 소설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닥터 지바고』는 17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서사와, 그 뒤에 별도의 장으로 수록된 시 25편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은 처음 읽을 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나긴 소설의 여정 끝에 갑자기 시집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의 의도는 분명하다. 소설의 서사 전체는 이 시들을 존재하게 만들기 위한 거대한 발판이다. 지바고의 삶이 혁명과 전쟁과 질병과 상실에 의해 하나씩 부서져가는 과정을 독자가 목도한 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그의 시다. 시는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그것이 파스테르나크가 소설 전체를 통해 구축하려 한 단 하나의 명제다. 수록된 시들 중에는 「햄릿」, 「겨울 밤」, 「막달라 마리아」, 「부활」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시들은 단순히 지바고라는 허구적 인물이 쓴 것이 아니라 파스테르나크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다. 특히 「겨울 밤」의 첫 행—"눈보라가 대지를 휩쓸었다 / 온 세상을"—은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한 줄로 집약한다.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의 이미지가 대비를 이루며, 파스테르나크의 세계관 전체를 담아낸다.


유리 지바고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그는 전통적인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영웅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역사를 바꾸려 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지도 않는다. 톨스토이의 나타샤처럼 생동감 넘치지도, 도스토옙스키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사상적으로 격렬하지도 않다. 어떤 독자들은 그를 수동적이고 나약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는 바로 이 나약함 속에 인물의 핵심을 새겨넣었다. 지바고는 역사의 파도에 떠밀리는 존재지만, 그 파도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볼셰비키 적군에 강제 징집되어 시베리아 숲속에서 게릴라전에 동원될 때도, 그는 나무들을 관찰하고 달빛을 기록하고 시를 쓴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가장 깊은 형태의 응시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시인의 눈은 이데올로기가 왜곡한 세계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보는 교정렌즈다. 지바고는 혁명을 처음 목격했을 때 진정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혁명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르는" 행위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경이로움은 혁명이 인간을 역사의 톱니바퀴로 전락시키는 것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슬픔으로 변해간다. 지바고가 혁명을 저주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절망하고, 슬퍼하고, 지쳐간다. 그러나 분노하지는 않는다. 분노는 이미 상대방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슬픔은 다르다. 슬픔은 잃어버린 무언가가 원래 아름다웠음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라라—그녀의 본명은 라리사 표도로브나 안티포바, 결혼 전 성은 귀샤르—는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독자의 가슴에 남는 존재다. 그녀는 단순히 주인공의 연인으로 기능하는 여성이 아니다. 파스테르나크는 라라를 창조할 때 여러 겹의 의미를 겹쳐 놓았다. 표면적으로 그녀는 개인적인 모델을 갖고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실제 연인이었던 올가 이빈스카야가 라라의 외형과 감정적 핵심에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설 안에서 라라는 단순한 실제 인물의 투영을 넘어선다. 그녀는 혁명 이전 러시아의 아름다움과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고통을 한 몸에 담고 있다. 그녀의 삶은 착취로 시작된다. 십대 시절 어머니의 정부였던 코마로프스키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그 수치와 분노를 안고 성인이 된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녀가 겪는 고통은 러시아가 겪는 고통과 평행을 이룬다. 그래서 지바고가 라라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불륜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적 사건이다. 그는 라라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지워버린 러시아의 실제 얼굴—고통받지만 아름답고, 상처 입었지만 존엄한—을 본다. 우랄 산맥 기슭의 바리키노에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겨울은 소설의 절정이다. 창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내부의 촛불이 가늘게 흔들리는 가운데, 지바고는 밤새 시를 쓰고 라라는 잠든다. 그 장면은 파스테르나크가 소설 전체를 통해 구현하려 한 것—역사의 격랑 속 인간적 시간의 섬, 사랑과 창조가 공존하는 순간—의 결정체다.


파스테르나크가 소설 속에 구현한 문체는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는 무엇보다 시인이었고, 그 사실은 산문의 모든 층위에 각인되어 있다. 그의 자연 묘사는 러시아 소설의 오랜 전통 위에 서 있지만, 동시에 그 전통을 넘어선다.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의 자연 묘사가 풍경화라면, 파스테르나크의 자연은 내면 상태의 직접적인 연장이다. 겨울 숲의 침묵은 지바고의 고독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바고의 고독 그 자체다. 봄날의 해빙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진 무언가다. 이 기법은 때로 서사의 속도를 늦추고, 플롯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비판자들이 종종 지적하듯, 소설에는 우연의 일치가 지나치게 많다. 지바고와 라라는 각자의 삶의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다. 이것이 리얼리즘의 관점에서는 결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에게 이 반복적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며, 그것은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형이상학적 확신의 표현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지독히 평범하다"고 혹평했고, 그 판단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플롯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허술하다. 그러나 나보코프가 공들여 무시한 것은, 이 소설이 플롯 중심의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시편이라는 사실이다. 『닥터 지바고』를 플롯으로 읽으면 실망하고, 음악으로 들으면 압도된다.


소설의 가장 심층에는 파스테르나크 특유의 기독교적 형이상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적 신앙과는 다르다. 파스테르나크에게 기독교는 무엇보다 역사 속에서 발생한 혁명이었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인류는 처음으로 개인을 발견했다. 그 이전의 세계에서 인간은 집단—부족, 민족, 계급—의 일원으로만 존재했다. 그리스도는 단 한 명의 개인으로 죽음에 맞섰고, 그 개인적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인간의 개별적 삶이 우주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파스테르나크의 생각이다. 소설 속에서 지바고의 삼촌 니콜라이 베데냐핀 신부는 이 관점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역사란 집단이 아닌 개인에 의해 움직이며, 삶의 신성함은 제도가 아니라 개별 인간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바고라는 이름 자체가 이 신학적 맥락과 연결된다. 러시아어에서 "지보이"(живой)는 "살아 있는"이라는 뜻이고, "지바고"(Живаго)는 그 고어형이다. "보가 지봐고"(Бога живаго)는 성경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뜻하는 표현이다.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는 삶을 창조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두 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그 이름 자체가 이미 그의 상징적 역할을 지시하고 있다. 소련 이데올로기가 내세운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이 역사의 법칙을 실행하는 집단적 도구였다면, 지바고는 그 정반대의 존재—역사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대체 불가능한 개인—다.


소설의 조연들 역시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다. 지바고의 친구이자 볼셰비키 혁명가 안티포프—라라의 남편이 되는 스트렐니코프—는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혁명의 이상에 순수하게 헌신한 사람이다. 착취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열정으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마저 버리고 혁명의 집행자가 되었지만, 결국 그가 섬긴 체제에 의해 버림받는다. 파스테르나크는 스트렐니코프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 인물을 통해 이상주의가 권력과 결합할 때 어떻게 인간성을 소진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스트렐니코프의 비극은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훌륭한 사람이어서 발생한다. 그는 이상에 완전히 자신을 헌납했고, 그 헌납의 결과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 이야기는 지바고의 이야기와 대조를 이루며, 파스테르나크의 핵심 논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완전한 헌신은 때로 완전한 상실이다. 반면 지바고의 불완전한 삶—의무를 져버리고, 두 여자를 사랑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은 그가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다는 증거다.


소설은 지바고의 죽음으로 정점에 이른다. 그 죽음은 의도적으로 초라하게 설계되어 있다. 1929년, 모스크바. 지바고는 전차를 타고 가던 중 심장마비로 죽는다. 전차 안에서, 승객들에 둘러싸여, 별다른 마지막 말도 없이. 혁명의 대서사시 한가운데서 한 개인이 이렇게 사라진다. 위대한 사랑도, 완성된 시집도, 죽음의 순간에는 없다. 이 초라한 죽음은 파스테르나크의 계산된 선택이다. 역사는 개인의 죽음을 기념하지 않는다. 역사는 계속 굴러간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소설의 진짜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강렬한 의미를 획득한다. 수십 년이 흐른 후, 2차 대전이 끝나고 스탈린이 죽고 시대가 조금 달라진 어느 날, 지바고의 옛 친구들—고든과 두도로프—은 한 작은 책을 손에 든다. 그것은 지바고가 남긴 시들을 모아 출판된 얇은 시집이다. 두 늙은 남자는 강가에 앉아 그 시들을 읽는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쓴다. "그들은 이 시들 속에서, 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언어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전차 안에서 죽어간 한 남자가, 그의 침묵하는 목소리가, 시간을 넘어 다시 살아난다. 이것이 문학의 부활이다.


『닥터 지바고』를 둘러싼 역사의 아이러니는 소설이 출판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노벨상 파문이 잦아들고 파스테르나크가 죽은 뒤에도, 소련에서 이 책은 금서로 남아 있었다. 그의 연인 올가 이빈스카야는 1960년 파스테르나크가 죽은 직후 다시 체포되어 8년간 강제수용소에서 복역했다. 그녀의 딸도 함께 체포되었다. 당국은 이빈스카야가 파스테르나크의 인세를 불법으로 수령했다는 죄목을 붙였지만,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한편 서방에서는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65년에 영화를 만들었고,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가 지바고와 라라를 연기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모리스 자르가 작곡한 테마곡 「라라의 테마」는 그 자체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의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영화가 소설의 표면—멜로드라마적 사랑 이야기—만을 가져가고, 그 철학적 심층은 놓쳤다고 느꼈다. 영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소련 문학사의 관점에서 『닥터 지바고』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 체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는 강제수용소의 잔혹한 현실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방식으로 기록했다. 반면 파스테르나크는 고발이 아니라 증언을 택했다. 그는 소련 체제가 무엇을 했는지를 고발하는 대신, 그 체제가 파괴하려 했지만 파괴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 접근법의 차이는 단순히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다. 파스테르나크는 고발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고발은 여전히 상대방의 언어와 논리 안에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저항은 상대방이 부정한 가치—사랑, 아름다움, 개인의 삶의 고유성—를 살아있는 언어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닥터 지바고』가 선택한 방식이었고, 그것이 소련 당국을 가장 깊이 불안하게 만든 이유였다.


오늘날의 독자가 이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소련은 사라졌고, 냉전은 끝났으며, 러시아 혁명은 교과서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닥터 지바고』는 살아 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반복되는 인간의 조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운동이 개인을 압도하려 할 때, 그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적 진실을 지킬 수 있는가. 역사의 폭력 앞에서 사랑은, 예술은, 정신은 어디에 그 피난처를 마련하는가. 이 물음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지우려는 충동은 인간 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으며, 파스테르나크가 기록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88년,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정책이 도래하면서 『닥터 지바고』는 마침내 소련에서 공식 출판되었다. 파스테르나크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소련의 독자들은 처음으로 이 소설을 자국어로, 금지의 긴장감 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989년에는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스톡홀름을 방문하여 아버지를 대신해 노벨 메달을 받았다. 31년 만의 수상이었다.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은 모스크바 근교 페레델키노의 작가 마을에 있다. 그가 말년을 보낸 다차(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무덤 주변에는 러시아의 소나무와 자작나무들이 서 있다. 지금도 사람들이 찾아와 꽃을 놓아두고 간다. 젊은 시인들, 연인들, 그리고 먼 나라에서 온 독자들이. 그들이 무덤 앞에 서는 이유는 파스테르나크가 옳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을 지울 수 없다. 진심으로 쓴 언어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불완전하고, 고통스럽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조차도—은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독자의 귓속에는 무언가가 남는다. 우랄의 눈보라 소리일 수도 있고, 라라의 이름일 수도 있고, 지바고가 밤새 써 내려간 시의 한 구절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울림이 남아 있는 한 파스테르나크는 살아 있다. 그가 지바고의 입을 통해 말했듯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가 남긴 흔적 속에서 계속 산다. 『닥터 지바고』는 그 흔적 중 가장 빛나는 것들 중 하나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D%98%EC%82%AC_%EC%A7%80%EB%B0%94%EA%B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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