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았고 나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검정고시에 합격하면서 한시름 놓았다. 불합격을 면했으니까. 만에 하나 떨어졌으면 호기롭게 학교를 나갔다가 이듬해 친구들보다 한 학년 낮은 상태로 복학해야 할 수도 있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서인지 날이 많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달력은 아직 9월 정도였고 2001년은 1/3 가량 남아있었다. 중학교 졸업장은 확보했고 이제 나와 부모님은 또 결정을 해야 했다. 이 자퇴생의 고등학교 진학을 말이다.
사실 나는 그때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를 치고 싶었다. 과연 내가 고등학교에 얼마나 적응할까 싶었고, 중학교도 3개월 만에 완성(?)했는데 고등학교라고 안될까 하는 자신 혹은 자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중고등학교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여 일찍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한편, 나이가 어리니 재수, 삼수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귀여운 계산도 깔려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나올 때에 부모님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들어가겠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애초에 중학교를 그만뒀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아무래도 딸아이를 두 번 다 학교 밖에서 자라게 하는 게 부모님께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중학교 자퇴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거니까. 나도 이번에는 엄마 아빠 말씀에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에 솔깃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생각보다 ‘자퇴생’의 삶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아무리 학교 다니는 애들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당당하다고 정신 승리를 해도 다른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해 8월 말이었나,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에, 친구들이랑 지역 대학에서 하는 청소년 캠프에 갔었는데 일단 나는 가입부터 쉽지 않았다. 신청서에 이름, 나이, 소속 학교를 써야 했으니까. 그리고 캠프 당일 자기소개를 할 때 담당 선생님께서 “이름이랑 학교 말하세요.” 하셨는데 그때부터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를 들어야 했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면 “으잉?”하는 반응부터 “왜 학교를 관뒀어?”라는 질문 세례를 받을게 뻔하니까.
나는 학교를 나왔을 뿐 세상과 담을 쌓은 건 아니었다. 마트에서 엄마의 심부름을 할 일도 있고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릴 일도 있었다. 그러면 집을 나서면서부터 “니 됐거든 아니가? 아 맞다 니 학교 안 가재?”라고 면전에서 들어야 하거나, 아니면 등 뒤로 “쟤잖아 그 학원 하는 집 딸. 학교 안 다니는.” 하는 수군거림을 각오해야 했다. 힘들었다.
평일 낮에 외출할 일이 간혹 있었다. 주로 시내에 있는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제 집을 나서면서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혹시라도 나를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무사히 동네를 통과해 버스를 타도 끝나는 건 아니었다. 기사님도 나를 의아하게 보거나 “학생 오늘 학교 안 가나?” 이렇게 물어보셨고 나는 그런 순간이 정말 무섭고 싫었다. 무사히 시내에 도착하면 그만일 것 같지만 평일 낮에 대형 서점에서 문제집을 보는 아이는 눈에 띄는 존재였는지 이번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서 또 그런 말을 듣는 것이다. 내가 책을 고르고 있으면 “학생 니 학교 안 가고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노?” 하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매번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이라도 들으면 그 기억이, 그로 인한 위축이 꽤 오래 지속됐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해결책은 “개교기념일이라서요.”였다. 이렇게 대답하면 약간 의구심을 갖고 쳐다보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넘어가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니까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셨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내가 왜 나의 일상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왜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남들은 왜 그렇게 남의 인생에 관심들이 많은지 이해가 안 됐고 불편했고 서러웠다.
다니는 학교가 없다는 것,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이렇게 불편했다. 그리고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 성과 비슷한 걸 만들어냈어도 소속이 없으니 세상에 당당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내가 점차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이런 일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서 고등학교를 ‘입학’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확히 일 년 뒤 고등학교도 자퇴하게 되면서 나는 같은 일을 또 경험하게 된다. 인생이란...)
그때 해리포터가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기숙학교를 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