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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할머니네 방앗간』

by 고래뱃속
할머니네 방앗간 X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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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에게 “지금까지 먹어 본 떡 중에 가장 맛있는 떡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제 머릿속에는 대뜸 하나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할머니가 장독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시루떡을 꺼내 주시던 모습입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그 뜨끈뜨끈하고 포슬포슬하고 달곰한 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어린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으니까요. 그 이후로 한동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떡은 내내, 한겨울 언 몸을 녹여 주는 팥 시루떡이었습니다. 어딜 가든 시루떡만 보면 그 장면, 그 맛이 눈앞에, 혀끝에 어른거리곤 했지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직접 빚어 쪄 먹었던 송편입니다. 어린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빚은 모양은 제각각인데, 갓 쪄서 따끈따끈하고 수분기를 가득 머금은 송편 한 알을 앗뜨뜨, 두 손에 쥐고 호호 불어가며 먹을 때, ‘송편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다니!’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전까지 익숙했던 약간은 단단한 질감이 아닌, 몇 입에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부드러운 쫄깃함이었거든요. 씹으면 씹을수록 달큰함에 온몸이 녹아내렸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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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가지의 인상적인 경험 뒤에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까지나 그 두 장면으로 귀결됩니다.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떡을 이것저것 먹어 보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떡’만큼 맛있는 떡을 저는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맛이라는 것에는, 맛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억과 경험이라는 요소도 아주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할머니네 방앗간』을 통해 그 시절의 기억들을 반갑게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서인지, 장면마다 뜨뜻-뭉근한 정(情)의 향이 폴폴 풍겨 옵니다. 안 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기억 속 최고의 떡들을 손끝에서 다시 재현해 봐야겠어요. 여기서 관건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찐 떡을 한 입 베어 물기’입니다. 그 곁에 사랑하는 이들도 빠질 수 없지요. 한 해의 시작을 기분 좋게 데워 주는 온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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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슬포슬 시루떡 레시피]


1. 팥은 하룻밤 불려 줍니다. 겨울밤 서리 사이사이 남몰래 핀 설렘을 꿈 자락 너머로 슬며시 흘려 놓고요.

방앗간에서 정성스레 빻은 쌀가루와 찹쌀가루를 골고루 섞어, 고운 체에 받쳐 두 번 내립니다. 예쁜 눈이 폴폴폴. 소금은 살짝, 설탕은 기호만큼 넣어 고루 섞어 줍니다.

2. 불린 팥을 찬물에 넣고 삶아 줍니다. 끓기 시작한 뒤 5분이 지나면 물을 버리고, 새 마음 새 물로 갈아준 뒤 다시 약불로 30분 동안 삶아 줍니다. 이때, 은근한 인내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팥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3. 팥이 어느 정도 무르면 팥물을 버리고 다시 중불에 올려 팥에 남아 있는 수분을 날려 줍니다.

고슬고슬해진 팥을 절구로 빻으면서, 소금과 설탕을 넣고 골고루 섞어 줍니다. 새해에 대한 희망도 후후 불어넣으면서요.

4. 찜솥에 젖은 면보를 깔고, 떡틀을 올려 팥을 한 겹 얇게 깔아 줍니다.

5. 쌀가루를 넣고 얇게 펴 줍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펴 올리듯.

6. 위 과정을 반복한 뒤 마지막엔 얇게 펴 올린 팥으로 마무리합니다. 귀한 이를 초대하는 레드카펫을 깔아 올리듯.

7. 뚜껑을 덮고, 김이 오른 찜솥에 25분 쪄 준 뒤 10분 뜸을 들입니다. 완성을 향해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다림이 있다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기억하면서요.

8. 이제, 할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시루떡을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추억 여행을 떠납니다.

(※레시피 참고-만개의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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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쫄깃 밤송편 레시피]

1. 멥쌀가루 5컵에 소금을 넣어 섞고 체에 걸러 준 뒤, 뜨거운 물을 조금씩 섞어 가며 반죽해 주세요. 말랑말랑 찰랑찰랑 마음을 빚듯이. 반죽은 갈라지지 않도록 치대어 젖은 면보를 덮어 두어요.
따끈따끈 삶은 밤 15알에 황설탕 2숟가락, 꿀 1숟가락, 소금 한 꼬집을 넣어 섞어 주세요. 달콤함에 달콤함을 더하면 오래 기다려 온 겨울의 꿈이 익어가지요.
2. 반죽을 떼어내 동그랗게 굴려서, 가운데를 움푹하게 만들어 소를 넣어요. 반죽을 꾹 눌러 공기를 빼고 가장자리를 붙여가며 송편 모양을 만들어 주세요. 만드는 동안 겉면이 마르지 않도록 면보로 덮어 가며 만들어요. 몸도 마음도 떡도, 마르지 않도록 잘 살펴 주는 손길이 중요해요.
3. 김이 오른 찜기에 젖은 면보, 솔잎을 깔고 송편을 올려 주세요. 뚜껑을 덮고 15~20분 정도 쪄 주세요. 향긋한 솔이불 위에 마침내 무르익은 겨울 꿈이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도록요.
4. 어린 날의 말랑말랑한 마음을 닮은 동글동글 송편이 완성되었어요. 마주 보고 먹는 이의 두 눈도, 오물오물 씹는 내 입도 동글동글 반달이 돼요.
(※레시피 참고-우리의 식탁)



글: Editor LP




할머니네 방앗간|리틀림 글·그림|2017년 10월 23일|15,000원

할머니네 방앗간이 준

‘오래도록 간직할 따뜻함’이라는 선물
작가는 어렸을 적 할머니네 방앗간의 풍경을 그때 그 기억으로 담아냅니다. 방앗간에는 사람들의 들썩임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여러 곡물들의 냄새가 함께합니다. 정겨운 수채화로 할머니네 방앗간이 품고 있던 따뜻함을 되살리고, 곡물과 떡 사진을 이용한 콜라주를 통해 기억 속의 냄새를 생생하게 불러냅니다. 작가가 할머니네 방앗간을 통해 그려내고 싶었던 건 그때 마주했던 ‘따뜻한 온기’입니다. 이 책은 마치 갓 나온 떡을 받아든 것처럼 따뜻한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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