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이 끊임없는 마을, 제천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3월,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주말의 휴식을 서울 근교 여행지에서 보내기로 했다. 목적지는 충북 제천. 오래전부터 ‘산과 물의 도시’라 불려 온 이곳은 자연 속에서 온전히 나를 내려놓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단숨에 도착한 제천역. 이번 여행은 든든한 인솔자가 이끌어주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 인솔자는 바로 제천 관광택시 기사님. 뚜벅이로는 쉽게 다니기 힘든 낯선 마을, 관광택시 덕분에 편안하게 여행의 결을 따라갈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기사님은 제천 토박이로, 관광객들이 놓치기 쉬운 명소와 지역의 숨은 이야기까지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나니, 마치 고향에 계신 아버지와 동행하는 여행처럼 편안했다.
청풍호, 산과 물이 그려낸 한 폭의 풍경
맑은 바람은 불어오고
밝은 달빛은 끊임없이 비춰주네
첫 목적지는 청풍호반 케이블카.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기사님께서 청풍호에 깃든 이야기를 해주셨다. “맑은 바람은 불어오고 밝은 달빛은 끊임없이 비춰주네” 기사님의 말처럼, 탁 트인 호수 위로 부드럽게 깔린 아침 햇살이 인상적이었다.
약 10분 간 케이블카에 탑승하고 나니 높디높은 비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내려다본 청풍호의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마치 다도해를 연상시키는 작은 섬들이 호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는 포토스팟을 쫒으며 카메라와 눈에 청풍호의 풍경을 담아 볼 수 있었다.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주황색 물체가 꼬물꼬물 비봉산을 오르고 있었다. 바로, 청풍호 모노레일이었던 것. 왕복 케이블카를 끊었지만 양옆이 훤히 뚫려 시원한 모노레일을 경험하고 싶었다. 모노레일 탑승장에서 1인당 4,000원만 추가 결제하면 모노레일 하강 탑승권으로 바꿔주신다.
하지만,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주차장 사이 꽤나 긴 거리가 있어 케이블카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 시간대를 확인하고 탑승해야 한다. 관광택시를 이용한 우리는 기사님과 통화하여 모노레일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객을 우선시 생각해 주신 기사님 덕에 하고 싶은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었다.
청풍호 관광을 마친 후에는 근처에서 자유롭게 점심을 즐기는 시간이 주어졌다. 제천 맛집 정보를 몰랐던 우리를 위해 기사님께서 우렁쌈밥, 황기떡갈비, 순두부 맛집 등을 추천해 주셨고, 고민 끝에 선택한 식당까지 직접 데려다주셨다. 자리 여부까지 미리 확인해 주신 덕분에 번거로움 없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기사님 추천의 우렁쌈밥집. 넉넉한 쌈채소와 고소한 우렁강된장이 어우러진 한 끼를 앞에 두고, 우리는 어느새 제천의 정(情)에 스며들고 있었다.
의림지, 천 년의 시간이 머문 곳
다음 목적지는 의림지.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다. 도착하자마자 기사님이 말했다. “이곳에서는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느껴보세요.”
그 조언대로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제천의 명소, 용추폭포 유리다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마주하는 순간, 마치 내가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대마도를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이 여행의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몸과 마음을 위한 따뜻한 쉼, 한방 족욕
여행의 마무리는 한방 족욕카페에서의 족욕 체험과 황기차 시음이었다. 제천은 한방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따뜻한 한방 약재탕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기사님께서 인솔길에 황기 같은 한방약초로 유명한 제천에는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한의대가 있다며 넌센스 퀴즈를 제시해 주셨다. 딱 3명만 들어갈 수 있는 ‘세명대’가 정답이었다. 우리는 기사님의 유쾌하신 장난에 절로 미소를 지으며 족욕을 즐길 수 있었다.
제천에서 찾은 ‘쉼’의 의미
이번 제천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위한 ‘쉼’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관광택시 덕분에 길 찾는 수고 없이 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청풍호의 푸른 물결, 의림지의 고즈넉한 정취, 그리고 한방 족욕체험까지. 제천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기차 안. 그 고요함이 유독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이렇게 깊은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참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