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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 Jan 03. 2025

공존의 심리학

chapter 1

외계에서 침공한 괴생명체가 세상을 무너뜨렸다. 살아남은 지구인들은 폐허가 된 도시의 지하철역으로 모여들었다. 생존자들이 의탁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반목하던 초능력자들과 평범한 사람들,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무리를 지었다. 새로운 사회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역할을 분담했다. 초인들은 각자 능력을 활용하여 괴물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켰고, 일반인들은 거처를 가꾸고 부상자들을 돌봤다.

‘인간들끼리 서로를 도와야 해.’ 처음엔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그러나 외계 생물과의 대립이 길어지자, 급조된 인간 사회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의 기여를 강조하며 점점 더 많은 권리를 요구했다. 처음에 일반인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초능력자들이 없으면 인간 사회는 끝이다.’ 그 믿음이 모든 것을 합리화했다.




“지수, 순찰은 어땠어?”

모임의 중심에 있는 지수는 초인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괴력은 1:1이라면 괴생명체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는 집단 생존에 큰 역할을 했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따랐다.

“광화문 교차로에서 배회하는 세 마리, 우리 팀이 간신히 제압했어,” 지수는 웃으며 말했다. “더 나은 장비가 필요해. 그리고 활동량이 많은 초인들에겐 질 좋은 식량이 우선적으로 배급돼야 하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들의 머릿속에는 지수와 초능력자 무리가 그들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너희는 이미 우리보다 훨씬 풍족하게 누리는 것 같은데.”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주변 사람들은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웠다. 청각 능력이 발달한 초인 한 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재이는 정찰에서 돌아온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수와 쌍둥이인 재이는 언니와 다르게 평범해 보였다. 그녀는 늘 벽에 기대 있거나 거처 한쪽 구석 일반인 무리에 앉아 있었다. 회의 중에도 특별히 의견을 내지 않았고, 필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는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보였다.

재이는 벽에 기대어 있던 자세를 약간 바꾸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초인들의 요구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들은 일반인과 구분되는 권리, 더 많은 권리를 원했다. 음식, 일용품, 공간 등을 A/B 급으로 나누어 A급을 차지했다.

“우리는 밖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잖아.” 지수는 당당하게 말했다.

폐허 속에서 구해온 물자들이 상태가 좋을 리 만무했다. B급은 대부분은 쓰레기에 가까웠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초능력자들을 반대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웠다. 안전이 흔들릴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일반인들의 동요가 감지되자, 예지가 사람들을 달랬다. “모두 노력하고 있는 것 알아. 이렇게 하자. 초인들 말고, 매주 공동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A급 식량과 물품을 배급하기로.” 예지는 사이코키네시스, 염력 사용자였다.

“다만,” 신체 재생 능력을 가진 현준이 덧붙였다. “자원 수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건 다들 알 거야. 쉽지 않지만, 결단이 필요해. 가장 기여가 적거나 부정을 저지른 사람도 함께 뽑는다. 선정된 사람은 추방할 거야.

평범한 사람들은 초능력자들이 정한 룰에 굴복했다. 그들에겐 싸울 무기가 없었다. 미지의 괴물들과 싸우느니 군림하는 초인들의 보호를 받는 편이 나았다. 매 일요일마다 환호하는 사람 한 명과, 절망하는 사람 한 명이 생겼다. 평범한 사람들은 과자 한 조각이라도 맛보려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감시하며, 자신을 대신할 제물을 찾았다. 이후 새로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도, 초인들이 만든 시스템에 서서히 적응했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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