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린이집 앞에서 배운 두 나라의 방식

by Karel Jo


아내가 첫째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충전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뒤, 우리의 일상은 다시 익숙한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코로나 변이인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확진자가 폭증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전히 마스크는 가방 속에 있었고, 손 소독제는 현관 앞 신발장 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코로나에 적응한 우리는 더 자주, 더 많이 집 밖에서 행복의 기억을 쌓아 올려가는 중이었다.


아이가 그렇게 조금씩 자라며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 무렵, 우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18개월쯤 넘은 아이가 슬슬 간단한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고,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을 훨씬 더 잘하게 되는 순간. 여전히 우리의 품 안에서 많이 울고 안겨 있기를 좋아하지만, 점점 나와 아내의 발보다 자기의 두 다리로 그렇게 아이는 세상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나와 아내라는 울타리 밖으로, 아이를 세상으로 처음 내보내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당연하게도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내는 한국의 어린이집 시스템을 어려워했다. 일단, 우크라이나라고 어린이집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공립으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등록이 그렇게 한국처럼 표준화되고 절차화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자리가 있으면 그곳에 간다. 기본은 같으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그래서 처음에 아내에게 한국에서는 먼저 입소신청을 하게 되고, ‘맞벌이’, ‘다자녀’, ‘한부모’ 같은 항목들로 우선순위와 가점을 받아 순위가 갈린다는 설명을 처음 해 주었을 때, 아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마치, 자기가 지금 만 두 살이 되려는 딸아이의 어린이집이 아니라 대학교의 무슨 과를 선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정으로, 살짝 질려 있었다.


아내의 질린 표정을 보며 나는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했다. 정부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공동인증서를 등록하고, 아이 정보를 입력하고, 희망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대기 순번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로 하면 간단했지만, 막상 하나하나 진행하려니 꽤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결정적으로 나도 한국어를 이해한다 뿐이지, 부모로서는 처음 해보는 일이 아닌가, 나조차도 매번 새로운 절차 앞에서는 검색창을 열어야 했다.


몇 번의 인증 절차를 거치며 모니터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그 광경을, 아내는 내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옆에서 뭔가 한 번씩 숨소리가 커질 때마다 궁금해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 생각하여 아내는 자주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다림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 줄 십분 알고 있기에 가끔은 번역기를 켜서 행정 용어를 설명해 주었고, 가끔은 그냥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할게.”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번도 크게 다투지 않았다. 어쩌면 '넌 그냥 가만히 있어'라는 사소한 오해로 이어져 감정이 상할 수도 있었던 순간이지만, 아내는 나의 설명을 끝까지 들었고, 나는 아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답답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의 선택과 기다림을 함께 겪으며 조금은 단단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로가, 그런 생각이 있었다. 아마 내가 우크라이나에 살았을 때에도, 그때는 아내가 지금의 나의 역할을 해줄 거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입소 신청을 해 놓고 나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신청을 마치고 한숨을 푹 몰아쉬는 나를 보며 아내는 웃었다. “한국 아빠는 다 이렇게 해?” 하고 묻기에, 나는 "나도 모르지, 근데 그냥 나는 이렇게 해야 내가 편해"라고 답해 주었다.


사실 다른 아빠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일이란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은 시간을 쏟고 빨리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입소확정을 위해 한 번 아이와 함께 방문하여 면담을 오시면 좋겠다 하는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짧은 안내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지난 시간들이 겹쳐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건너던 날들, 서로의 언어를 더듬으며 이해하려 애쓰던 순간들, 그리고 지금 이 작은 나라의 행정 시스템 안에서 또 하나의 문턱을 넘는 이 순간까지.


아내는 문자를 읽고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기쁜지, 서운한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는 그저 장난감을 흔들며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작은 확정 문자가 우리의 삶에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나는 그런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괜찮아. 잘할 거야.” 그 말이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아내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면담 날짜에 방문한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이는 처음 보는 공간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교사의 인사에 수줍게 손을 흔들다가도, 이내 아내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 짧은 순간에 아내의 눈이 붉어졌다. 나는 아이를 안아 올려 교사에게 건네면서, 괜히 밝은 목소리로 “잠깐 친구들하고 선생님하고 놀고 있어, 아빠 엄마 원장님하고 조금만 이야기할게.”라고 말했다.


원장님은 좋으신 분이었다. 바로 옆 단지 아파트의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리고 우리 가족의 존재를 오며 가며 얼굴은 알고 계시다고 말씀해 주셨다. 간단한 설명과 잘 부탁드린다는 그 말을 마치고 인사하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웃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건, 결국 조금씩 손을 놓는 연습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고마워. 나 혼자였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 혼자였으면 이렇게까지는 못 했을 거야.”


우리는 서로의 나라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낯선 절차와 두려움 앞에서는 함께 서 줄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아이를 키워낼 용기가 생긴다.


어쩌면 아이는 우리보다 더 자연스럽게 두 문화를 넘나들며 살아갈 것이다. 한국의 행정 시스템도, 우크라이나의 정서도, 그 아이에게는 당연한 배경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옆에서 길을 정리해 주고, 넘어질 때 손을 내밀어 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처음이 지나갔다. 지금까지도 나와 아내의 삶을 많이 바꿔놓은 그 슬픈 시간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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