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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가질 수 없는 나를 죽도록 원할 뿐

by Karel Jo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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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마음을 다잡지 못해 정신과 문을 두드리고,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당시의 나의 진단은 기분부전증이 심해진 우울증, 그리고 일부 자기애성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이야, 스스로도 워낙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지만, 자기애성 문제는 약간은 생소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 느끼고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내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니.


나의 생각과 달리, 자기애성 문제를 가진 이른바 나르시시스트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그토록이나 혐오하기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의 표상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스스로도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떠올려 보며 머리가 띵해지듯 이해가 갔다. 나르키소스가 사랑한 건 자기 자신이라기보다는, 물가에 비치는 소름 끼칠 듯이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단어를 조금 바꿔 쓰자면, 자기 스스로의 자아를 사랑하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되고 싶은, 또는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일종의 페르소나의 집착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나는 팀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빠로서도 얼마 되지 않은, 1-2년 사이에 급격히 달라붙은 내 이름 석 자 외의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서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사람을 다루는 데 서툴기 때문에, 또는 사람과의 친분, 인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멀리 했던 나로서는 아마 순식간에 불어난 주변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감당할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들 하나하나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순간을 거치면서 나 스스로도 굉장히 이상적인 나 자신의 분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누구나 좋아할 법한 그런 사람으로.


아버지로서는 딸에게 항상 애정을 쏟으며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차분한 감정으로 부드럽게 훈육할 수 있고, 팀장으로서는 솔선수범하여 나 스스로가 팀원들 앞에서 업무를 리드하며, 팀원들의 성장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 그 외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친구로서, 나 스스로로서.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화된 나란 존재는 현실의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도 그 모습은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러기엔 나의 정신은 더없이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고, 하루를 필사적으로 메우는 데에만 주력하는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정신이 바닥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나 자신이 그리는 나를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입증해 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들이 천천히 나에게 종속되어 감을 즐기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는, 이미 많은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기간에 걸쳐 받은 약물 치료와 상담은 적어도 나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파악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주었다. 바닥을 한 번 쳐야만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듯이, 너무 힘들면 차라리 떨어져 버린 뒤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건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그렇다고 내가 품고 있던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니 나는 일평생 남은 시간에 끊임없이 나 자신에 대한 탐구와 갈망 속에 절대로 이루지 못할 스스로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죽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만약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이상을 사랑하지 말고, 나 자신을 사랑해 보라.
거울에 비치는 내가 아닌, 스스로가 느끼는 내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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