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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집 이사도 힘든데 사무실 이사라니

경기남부인의 허덕이는 서울직장 적응기

by Karel Jo Mar 25. 2025


당신은 왜 그 회사를 다니시나요?
지금 회사에서 무엇을 제일 만족하시나요?



이 질문을 받은 직장인이라면 일단은 고민할 것이다.

'우리 회사의 장점이 뭐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 있게 이거다 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 그래도 다른 회사에 비해 조금은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꺼내게 된다. 이를테면, 그래도 연봉이 괜찮다든지, 그래도 이것저것 복지를 챙겨 준다든지, 그래도 성과평가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편이라든지.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제일 염원해 마지않고, 진지하게 연봉을 조금 깎더라도 고려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직주근접'일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 경기에 몰려 있고, 평균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편도 1시간이면 다닐 만하다고 평가받는 요즘에는 더더욱이나.




내가 다니는 회사는 구미에 공장이 있다. 구미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무리 멀리 살아봐야 차로 채 40분을 넘기시지 않고, 그마저도 그렇게 다니는 분들은 공장 내에서도 힘겹게 허덕이며 출퇴근하는, 회식이라도 있는 날엔 멀리 사는 사람을 어떻게 오래 붙잡아 두냐며 빨리 보내길 종용하게 되는 분들로 여겨진다.


서울사무소는 지금까지는 역삼동에 있었고, 강남 부근에 사무실을 둔 회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강남 근접성이 좋은 곳에 사시는 분들이 많았다. 분당이랄지, 광교랄지, 아니면 수지랄지. 물론 용인 처인구에 사는 나나, 동탄에서 오시는 분처럼 빨간 버스와 인생을 같이 묶어둔 분도 있다. 공통점은 강남에 사시는 분이 아니고서야, 모두 공평하게 최소 1시간은 출근시간에 쓴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의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던 외국계 회사의 숙명같이 임대기간 만료가 다가왔고, 그래도 경기남부인들이 많던 회사는 최선을 다해 강남권에 오피스를 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임대료가 비싸서 구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간혹 들려왔지만, 강남권을 벗어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현실은 기대를 배반한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자리를 구할 수 없던 애처로운 외국계 세입자는 멀리 여의도까지 거처를 옮겨야만 했고, 이제 이번 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나의 회사는 역삼동이 아닌 여의도가 된다.


출퇴근 거리가 단순히 멀어진다는 것 자체에는 물론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지금 회사와의 거리에 만족하면서 다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되겠나. 평균 출퇴근 시간이 말해 주듯이, 다들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할 돈이 없으니 시간으로 돈을 갈음하고 있을 뿐이지 않나. 나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해도, 그 시간 동안 이렇게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작년 9월에 지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새삼 이사라는 게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큰 짐들이야 그냥 여기저기에 배치하면 끝날 일이지만, 그놈의 잔짐이라는 게 얼마나 귀찮고 자잘한 것인지. 서랍 안에 정리되지 않은 짐을 이사 후 다시 꺼내고, 버리고, 재정리하는 데만 꼬박 두 달의 시간을 쏟은 것 같다.


지금 이제 사무실 이사를 앞둔 상태에, 내 옆자리에는 개인 짐을 싸라고 둔 박스 뭉치가 있지만 언감생심 책상 서랍을 열기가 두렵다. 분명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서 노트북, 개인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그리고 내 마음의 사직서를 항상 품속에 간직시켜 줄 딸아이 둘 사진을 제외하면 쌓아놓고 사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간단하게 보기나 할까 하고 연 서랍엔 나도 모를 서류뭉치가 가득했다.


대부분 파쇄하거나, 폐기할 문서들이겠지만 그만큼 내가 평소에 얼마나 일회성으로 자료를 출력하고, 주변 정리를 뒷전으로 하고 당시의 일을 처리하는 데만 집중했는지를 뒤늦게 가장 부끄러운 방식으로 깨닫게 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는 미룰 수 없어 오늘부터는 짐 정리를 해야겠지만, 새로 이사하는 곳부터는 정말, 지키기 어려운 다짐을 해야겠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자리 정돈을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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