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6 댓글 6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늘, 마음이 지쳐 타로를 뽑았다

내가 나를 읽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

by Karel Jo Mar 26. 2025


10여 년도 더 된 일이다. 20대 중반의 갓 졸업한 혈기왕성한 나는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겠다는 단꿈을 품고 있던 청년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체코에서 먼저 취업을 결심했다. 그래도 전공인데, 명색이 유학 한번 해본 경험도 없이 바로 공부를 시작해도 되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은 공감하겠지만, 만리 타향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돈을 벌기 위함이라면 더더욱이나. 집세라든지, 관리비라든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생소한 단어들을 몸으로 체득하며 누구도 위로해 줄 곳 없는 집 한구석에서 묵은 빨래를 돌리면서 이게 맞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타로를 처음 배우게 된 것은 그런 생활에 지치다 우연히 알게 된 점술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타로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마음이 힘들 때 타로에게 삶에 대해 물어보라 했다. 물론 당시의 내 체코어가 유창하긴 했어도 관용적인 표현이나 비유까지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른바 야매로, 나는 그렇게 타로를 사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지금, 한동안 나는 타로를 뽑지 않았다. 어쨌든 고국에 돌아온 나에게 더 이상 이방인으로의 방황은 없었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우울은 그때마다 그만의 방식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나는 잘 살고 있으니까, 지금 네가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정중한 거절과 함께. 비록 닫힌 문에 돌아서서 한숨을 잠시 내쉴지라도.


타로를 다시 뽑기 시작한 건 1년 전쯤부터의 일이다. 다시 내 마음이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지 않기 시작한 그때부터, 새로 시작한 약은 어쩐지 잘 듣지 않았고 나는 당시에 이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해결책은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러다 문득 타로카드를 새로 샀다는 기억을 떠올리고 포장을 뜯어 한 장 한 장, 카드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 타로카드는 무하 타로카드로, 체코를 사랑했던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는, 아르누보의 대표자인 그의 그림체가 묻은 카드를 보고 홀린 듯 결제했다. 실제 카드가 배송되어 왔음에도 당시의 힘듦을 핑계로 어딘가로 차곡차곡 묻어 버렸지만, 그때 다시 타로와 만난 이후로는 매일 함께 다니고 있다.




점술가 친구에게 타로를 들었을 때 그녀가 가장 강조한 말이 있었다.


타로는 너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아.
너의 문제를 같이 들어줄 좋은 친구일 뿐이지.



사주나 역술 같은 점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한 나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말하자면 현재의 나, 또는 내담자가 처한 상황을 읽어 주며 내담자가 원하는 것, 또는 내담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대비하거나 하는 상담꾼 같은 친구로 생각하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이 힘든 날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곳도 없이 주저앉은 날에는 카드를 늘어놓고 세 장의 카드를 뽑는 버릇이 생겼다. 카드를 읽는 스프레드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는 해도, 나는 습관적으로 과거/현재/미래 또는 아침/점심/저녁 등 시계열로 읽을 수 있는 이 스프레드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곤 했다. 몇몇 지인들은 내가 카드를 보는 걸 보고 신기해하며 커피 한 잔 정도를 사주며 가볍게 타로카드를 보기도 했다.


요새 사무실 이사와 가족 문제로, 마음이 또다시 어지러워진 나는 다시 카드를 세 장 뽑았다. 오늘의 시작과 끝이 어떨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


그렇게 나온 펜타클의 기사 / 마법사 / 완드의 9.


해석이야 여러 방향이 있겠지만, 내 방식대로 읽어낸 나의 하루는 아무래도 나 자신의 능력만을 중시하는 고지식하지만 능력 있는 기사가 출근하여, 모든 원소를 다루고 사교성 있는 마법사처럼 수많은 일을 척척 처리해 나가다가, 결국엔 수많은 일을 감당하지 못해 내일로 그 일을 끌고 가야 하는 운명적인 하루를 맞게 되는 모양이다.


... 평상시랑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은 하루인데?


아마도 타로는, 쓸데없이 마음의 고민을 갖고 가지 말고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은 특별히 평상시와 다를 게 없으니 고민하지 말고 매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조언이 어떤 결과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의 말이니, 오늘의 출근길은 조금 더 가벼워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이라는,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는 마음의 빚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