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구실팔살이야
'어머니, 전화 왔어요.'
큰아들이 전화를 건네준다. 벨이 여섯 번 울린 후 끊긴 전화를 다시 걸어서 건네준다. '군산 동생'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동생, 잘 있었어.'
'형님, 건강하시죠. 휴대폰 받지 않아서 집전화로 걸려고 했는데 받으시네요.'
'토요일이라 막내 아들네가 와서 같이 저녁 먹고 있었어.'
'형님이 잘 사셔서 아들들이 효도하니 좋으시겠어요.'
'아들들이 너무 착해, 내가 아들 덕분에 지금까지 살고 있어. 이제 그만 가야 할 틴디. 너무 오래 살았어.'
'형님, 노치원 다닐 만큼 건강하시면 되죠.'
'이러다 백 살까지 살 것 같어. 자네는 아직 어리니까 내 맘을 모를 거야.'
'아이고! 형님, 나도 구십 세 살이어요. 형님이 건강하게 사셔야죠.'
군산에 사는 동생은 가끔씩 안부 전화를 한다. 건강하게 잘 있는지 통화를 해야 안심이 된다고 한다. 내 나이가 구십하고도 여덟 살이다. 곧 백 살이 된다. 밥맛이 떨어져야 하는데 아직도 밥이 맛이 있어 오늘 내일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안되니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침이 되면 9시에 노인주간보호센터(노치원)에서 차가 온다.
'어르신, 준비 다 되었어요. 조심해서 타세요.'
오늘은 원장이 직접 왔다.
'김 선생이 안 오고 원장이 왔어.'
'김 선생은 시내로 운행하러 가서 제가 왔어요.'
'부추를 아침에 베서 다듬은 거야. 아들이 직접 농사지은 거라 농약하나 안쳤어.'
신문지로 둘둘 말은 부추와 고추를 원장에게 건넨다.
'어르신, 매번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노치원에는 40여 명의 노인네들이 같이 생활을 한다. 코로나 시기에는 많을 때는 70명이 넘었는데, 이제는 노인정에도 갈 수 있어서 많이 줄어들었다. 선생들도 2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10명 남짓이다. 노치원에 도착하면 아침을 준다. 수프에 간편식이다. 나는 큰아들이 정성스레 차려준 아침을 먹고 나왔다.
'어머니, 아침이라도 같이 드시게요.'
큰아들은 미역국에 간장게장을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맵고 짠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부드럽고 싱거운 음식을 준비한다.
식사를 마치면 오전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화요일에는 미술 활동이다. 그림책과 크레파스를 주고 따라 그리라고 한다.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백 한 살이 된 숙이네는 내 옆에 바짝 붙어 크레파스로 막 먹칠을 한다. 잘 듣지 못하고 치매기가 있긴 하나, 그래도 잘 따라 한다. 다음으로 내가 제일 나이를 많이 먹었다. 순이네는 팔십이 조금 넘었는데 치매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도 대소변은 가릴 줄 알아 노치원에 나온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던 고씨네는 요양 병원으로 갔다.
12시가 되면 점심이 나온다. 노치원에서 밥을 하고, 반찬은 식당에서 차로 실어온다. 식판에 흰쌀밥과 된장국이 있고, 반찬으로 김치, 동그랑땡, 콩나물과 요구르트를 준다. 백 한 살 숙이네는 식판을 들고 내 옆에 앉는다. 내가 밥 한술을 덜어 숙이네를 준다. 숙이네는 밥 욕심이 많다. 밥을 덜어 주니 좋아하며 밥을 먹는다. 반찬은 슴슴하니 먹을 만하다.
밥을 먹고 나면 낮잠 시간이다. 처음에는 밥 먹자마자 잠을 자는 것이 어설퍼서 뒤척거렸다. 매일 반복되니까 이제는 누우면 잠이 든다. 밥 먹고 한숨 자는 게 달게 느껴진다.
오후 프로그램으로 레크리에이션 선생님이 왔다. 손뼉 치기부터 어깨 돌리기, 노래 부르기 등을 같이 한다. 힘들어도 팔다리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뻣뻣하던 몸이 좀 풀린다. 선생은 잘한다며 칭찬도 하고, 이렇게 하라며 소리도 친다. 가끔은 웃기기도 한다. 따라 하다 보면 운동이 된다.
4시가 넘으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쌀밥에 김칫국과 반찬이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네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을 보면 먹게 된다. 저녁을 먹어야 밤에 잠을 잘 수 있다. 자다가 배 고프면 깰 수도 있으니 먹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비슷한 집 방향으로 차를 탄다. 카렌스 차량에는 다섯 명이 탔다. 먼저 송학동에 사는 노인네 두 명이 내리고 서수까지 간다. 서수에서 아이리에 사는 철호네가 내리고, 마룡에 사는 명수네가 내린다. 마지막에 용정리에 있는 내 집으로 간다.
'어르신, 편안히 주무시고 내일 뵈어요.'
차량 운전 김 선생은 나를 부축하고 마루까지 데려다주었다.
큰아들은 텃밭에 있나 보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텃밭으로 갔다.
'아들, 호박잎을 따나.'
'어머니, 잘 다녀오셨어요. 내일 아침에 호박잎 쪄서 된장에 쌈 싸 먹으려고요. 바람이 차지고 있어요. 방에 들어가시게요.'
큰아들과 나는 칠 년째 서수에 살고 있다. 큰아들은 결혼 후 서울에서 크게 장사를 하며 살았다. 내가 점점 나이 들어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니 큰아들은 귀향을 결심했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며느리와 같이 내려왔다. 살던 시골집의 거실, 식당, 화장실 등을 리모델링하였다. 서울 집을 판 돈은 노후 자금을 위해 군산에 상가를 마련하였다. 그렇게 큰아들네와 살림을 합쳤다.
'어머니, 건강하셔서 백 살까지 사시겠어요.'
'그래, 백 살까지 너랑 같이 살자.'
약속했던 큰며느리가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상처한 큰아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아들 곁에서 보살피고 싶은 맘으로 목숨 줄을 붙잡고 있다. 큰아들이 상처한 지도 삼 년째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들도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을 다했으니 그만 가야 할틴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