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
영국에서 거주하며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기억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한 월드컵 4강전이다. 나는 영국인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부 영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열정을 넘어선 광기의 집단인 훌리건들은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 행패를 일삼고 난동을 부리는 지라 그들의 이런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히 이런 일을 뉴스를 통해 볼 때면 과연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불릴 수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런 내가 축구 경기의 현장인 한국으로는 못 가더라도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미국영어 rotary)에 위치한 펍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나는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건만 이래서 외국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 거다라는 말이 생긴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빨간색 기피증이 있는 나였지만 옷장을 뒤져 단 하나밖에 없는 붉은색 티셔츠를 찾아 입고 운동화까지 장착한 뒤 급한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하이스트리트에 위치한 펍까지 냅다 달렸다. 다행히 아직 경기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영국인들과 유럽인들의 노랑, 갈색의 머리들 사이로 한국인들의 검은 머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미국과 달라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사는 뉴몰든(New Malden)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이 모여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그나마 길거리에서 만나도 인사를 나눌 정도의 지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영국인이 경영하던 펍이었지만 그날 펍 왼편에 위치한 잔디밭에는 대형 티브이가 설치되었고 그때가 영국 시간으로 정확히 몇 시였는지 모르겠으나 한국과 영국의 시차면으로 생각해 볼 때 늦은 오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제 앞에 놓인 티브이에서 막 경기가 시작되려고 하려는 찰나에 주위를 둘러보니 드물게 많은 인파가 이곳에 몰려들어 있었다.
과연 축구에 열광적인 마인드를 가진 영국인들은 다르다.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인데 한국사람인 나는 조용히 있는데 왜 지네들이 더 난리법석을 떠는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한번 짚어 생각해 보니 옛날부터 영국과 스페인 두나라의 역사적 관계가 복잡 다난하다. 여기에서 영국과 스페인의 관계를 파고든다면 이 글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아주 극초 간단하게 양국의 관계를 정리해 보자면 " 영국과 스페인은 과거 무적함대,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 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라이벌 관계였고 지금도 지브롤터 영토문제는 양국 간에 현안으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현대에 와서는 EU, NATO, UN 등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잘 요약했다. 이보다 더 간단명료한 요약이 없으리라.
월드컵 이야기를 하다가 짧으나마 양국의 역사관계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이러하니 지금은 국익을 고려해서 서로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앙금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영국 사람들은 은근히 이번 게임에서 한국이 스페인을 이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4강 진출이 달려 있는 게임이라 한국, 스페인 할 것 없이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니 불꽃 튀기는 경기가 될 것이고 한국인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거는 기대는 아마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이미 4강을 가르는 게임이 있기 전에도 우리 한국 응원단의 열의는 전 세계의 유명한 외신들의 첫 페이지를 도배하리 만큼 대단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개인의 중요한 일도 마다하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붉은 옷이 붉은 물결이 되고 또 그 물결은 커다란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던 것은 외신 기자들의 눈에도 분명히 신기하게 비추어졌으리라.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직접 응원에 가담했던 열정이 넘치는 이들의 에피소드들도 그들에게는 심심찮은 기사거리가 될만했다. 월드컵 응원에 참가했던 이들 중에는 벼락스타로 자리매김을 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2002년 월드컵은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4강 신화의 파동이 끝날 무렵에야 국민들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그에 대한 열기가 아주 쉽게 사그라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우리 한국 국가대표 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은 여러모로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다고 본다. 스페인의 우세 속에 대한민국이 승부차기로 스페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운도 따라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충격적인 결과가 많았던 이 대회는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프랑스가 겨우 승점 1점 만을 기록하고 무득점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고 또 다른 축구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 까지 조별 리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당시의 축구 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다. 일본과 공동 개최국이었던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아탈리아를 제치고 스페인을 극적으로 무너뜨린 다음에 준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이 대회가 우리에게 뜻깊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대진표를 받은 튀르키예나 일본 등과는 다르게 유럽의 축구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하여 이뤄낸 결과였기 때문인 것 같다. 버티고 버티면서 4강의 자리까지 올라갔건 만 아쉽게 결승 까지는 못 갔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개최국의 선수들 답게 잘해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대한민국 팀이 결국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0으로 지고 말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하기는 했으나 우리에게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을 이겼다는 자부심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대한민국이 4강으로 올라갔던 날, 정말 그날은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차들은 "빵 빵 빵 빵" 소리를 내며 라운드어바웃과 하이 스트릿을 돌면서 그 차 안의 한국인 운전자들은 "대 한 민 국"을 연호하면서 서행을 하였는데도 이 날만큼은 주위를 지나가던 영국인 운전자들이나 행인들이 우리를 시끄럽다고 나무라지 않고 호응을 해주었다. 우리 한국사람들이 "대 한 민 국"이라고 외치면서 지나가면 영국인 운전자들도 차의 속도를 낮추고 지나가면서 "빵 빵 빵 빵" 같이 경적을 울려 주었다. 그때 펍 앞에 서있었던 나는 영국인들이 차의 경적을 눌러 주면서 마치 퍼레이드 라도 하듯이 우리의 경사에 호응하며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울컥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들이 그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이었기에 우리의 그때 기쁨을 이해해 주는 듯했다.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 별 관심도 없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내가 이 정도였는데 축구에 관심이 있는 다른 국민들의 대한민국 팀의 4강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햬보았다. 스포츠가 종종 정치적으로 악용된 사례가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나는 오늘 축구로 인하여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어 아무런 약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이 한국인의 감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아, 이런 게 스포츠의 순기능 중의 하나이구나라는 것을 체험했다. 한국이 아닌 이 이국 만리 영국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한번 나 혼자서 "대 한 민 국"이라고 소리 내어 본다. 비록 그때의 경적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P.S.
제 글을 읽어 주신 고마운 분들께
"해진의 영국 생활기"는 여기에서 17회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정상 에필로그(맺음 이야기)도 없이 이야기를 끝내게 되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에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해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