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관리

by 해진

영국의 정원에는 달팽이들이 너무 많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하루는 꽃집에서 황금빛 메리골드의 향과 자태에 반해 화분 두 개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까짓 흔한 메리골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국은 비가 자주 오는 온화한 날씨 덕분에 꽃들이 잘 자라주어 엄청 예쁘고 꽃송이도 탐스럽다. 흔한 메리골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화분의 꽃들을 정원에 옮겨 심으려고 보니 화분 안팎에 수많은 민달팽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 예쁜 꽃들을 신나게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집달팽이들도 나의 소중한 꽃들을 겁도 없이 냐금냐금 먹어 없애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이 있고 없고 종류만 달랐을 뿐 그것들의 식성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 이 녀석들을 어떡하지. 그렇다고 대량살생을 할 용기는 없고 궁여지책으로 녀석들을 집게로 집어서 모두 비닐백에 넣어 묶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어디서 이 녀석들이 이리도 많이 생겨나는지 알 수가 없다. 잡아서 비닐봉지에 넣어 버린 녀석들만 해도 숱하다. 한놈 한놈을 자세히 보면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꼼틀거리는 모습이 귀여울 때도 있지만 어찌하랴 내 소중한 정원을 망치는 녀석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약을 뿌려서 그 녀석들을 없애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좀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여 시행할 수 없었다. 비닐에 꽁꽁 싸서 질식사 시키는 일도 사실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 보면 숨을 못 쉬게 되어 괴롭게 죽어가는 것이니 더 잔인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이 자기 유익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꽃밭을 달팽이 밭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프랑스 사람들은 에스카르고라는 달팽이 요리를 비싼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즐기면서 먹는데 이 녀석들도 한국의 조무래기 달팽이들과는 달리 큼직하고 튼실해서 요리재료로 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훌륭한 단백질 보충 식품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특히 집달팽이는 잘 삶아 속을 빼내어 초고추장에 무쳐 놓으면 골뱅이 무침 같은 맛이 나지 않을까 라는 상상까지 했다. 그런데 어떻게 요리를 하든 달팽이는 달팽이인지라 그것이 식용이든 아니든 나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녀석들이 내 꽃들만 먹어 치우지 않는다면 그냥 애완동물로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주 무시할 수 없는 번식력을 소유한 녀석들이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원에서 달팽이들이 우리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달팽이 포획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늘 이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려면 살생이 필수적이다. 아, 불쌍한 달팽이 들이여.


이렇게 남편이 열심히 달팽이들을 제거한 결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꽃들은 더 이상 달팽이들의 무지막지한 침략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하루에 몇 마리 정도는 늘 출몰해서 어떨 때는 그들을 보고도 못 본 체 지나칠 때도 있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정원의 진드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은 있지만 달팽이는 가끔 보여도 나중에 잡아야지 하다가 막상 잡으려고 하면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체수가 적었는데 전에 살았던 본머스뿐만 아니라 뉴몰든에도 그토록 많은 달팽이가 서식했던 것을 보면 그곳들이 한국에서 우리가 살았던 곳 보다 청정지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이 런던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지만 우리 집 후원에는 여우도 두 마리 살고 있었다. 하루는 후원에서 컨서버토리(conservatory: sun room)로 들어오면서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신발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깜빡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바깥에 두고 들어온 생각이 나서 컨서버토리 문을 열고 보니 밤새 여우들이 내 신발을 다 물어뜯어서 못쓰게 만들어 놓았다. 옆집에서는 애완용으로 가끔 후원에 놓아기르던 토끼를 여우들이 몰래 어디론가 데려가 먹어 치우는 변을 당하기도 했다. 하루는 외출했다가 저녁에 돌아오는데 개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지나가서 어느 집의 개가 이렇게 목줄도 없이 밤에 다니나 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봤더니 입이 뾰족하고 꼬리를 축 늘어 뜨린 모양새가 여우였다. 녀석이 우리를 보고도 피하지도 않고 한번 힐끗 쳐다 보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 불을 다 끄고 거실에 앉아서 후원 쪽을 바라보면 여우 두 마리가 눈을 반짝이며 뜰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거나 앉아 있는 것을 몇 번 본 적도 있다. 그래도 이 여우들을 잡아서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이라니 참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알기로는 여우들을 위해 남은 샌드위치를 일부러 정원 한편에 던져 놓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해가 질 무렵에 그렇게 빵 따위를 던져 놓고 아침에 후원에 나가 보니 정말 내가 놓아둔 음식이 사라졌다. 여우들이 먹어 치운 것이다. 정원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여우굴부터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블랙베리가 무성한 덤불 속에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하고 샅샅이 찾아보았는데도 거기에는 없다. 호랑가시나무(holly tree)들 아래에도 여우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 여우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녀석들인데 어느 집에서 온 녀석들일까 궁금했지만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내 신발은 망가져서 버렸어도 아직도 여우들이 정원을 파헤치거나 망친 일은 없었으니 이제 그 일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 이후에는 한 밤에 그들이 우리 집 후원에 들어와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것이 보여도 그냥 그 모습이 일상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더 이상 나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우들이 우리의 정원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어도 정원관리는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현관 앞에 있는 프런트 가든(front garden)에도 사철나무들이 담장처럼 둘러져 있어 그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때맞추어 잘라 주어야 하고 거실 창문 앞에 서 있는 향나무도 가끔 트리밍(trimming:다듬어서 예쁘게 잘라 줌)을 해 주어야 한다. 하여튼 꼭 영국이 아니더라도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이들은 알 것이다. 정원의 벌레들을 제거하는 일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앞뒤 정원의 잔디를 때맞춰 깎아주며 관리하는 것이 얼마니 힘든 일인지 말이다. 잠시만 바빠서 한눈을 팔면 정원이 아니라 잡초밭이 되고 만다. 집에 세든 사람들나간 빈집들을 보면 금방 표가 난다. 그래도 그 집주인이 와서 가끔 잔디라도 깎아 주어야 주위의 원성을 사지 않으니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많은 영국에서 살아가자면 이 정원 관리가 보통 일은 아닌 것이다. 주말 오전이면 너도 나도 손에 해지 클리퍼(hedge clipper: 정원용 가위의 일종))를 들고 론 모우어(lawn mower:잔디 깎는 기계)를 끌고 나와 집 앞 정원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 일은 대부분 남자들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럴 때 옆집에 사는 사람과 인사도 하면서 이웃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렇게 해서 옆집에 사는 영국인 아저씨 존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정원 돌보기가 남자들의 일이라고는 하나 남편이 정원을 손 볼 때 나도 작은 가위 하나 들고 나와 키 작은 나무들의 튀어나온 잎들을 머리 깎듯이 깎아준다. 그런데 영국에는 존이라는 이름이 왜 이렇게 많은 지 모르겠다. 그 이름이 흔한 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여길 가도 존 저길 가도 수많은 존들이 있다. 아, 또 본머스의 우리 집에 자주 들렀던 존과 나자린 교회의 존의 얼굴이 떠오른다. 심지어 내가 한국에 와서 활동했던 외국인 예배의 프레이즈 팀 리더였던 영국인 기타리스트 이름도 존이었다. 이 정도면 남산에 올라가 멀리 돌을 던지면 김 씨 아니면 박 씨에게 맞는다는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뭐든지 수고한 만큼만 되돌아오는 법이다. 정원 관리가 딱 그렇다. 이런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국에서는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아 경제가 허락하는 한 주택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가 그 집을 나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좋으나 싫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는 정원에서 적잖은 노동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후원의 나무 사이에 해먹을 잡아매고 거기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등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자두가 탐스럽게 잘 익어갈 무렵에는 그것들을 몇 바가지나 따서 아는 이웃에게 퍼돌리고 우리도 맛있게 먹은 달콤한 기억이 정원을 돌봐야 하는 수고를 다 덮어 주기는 하였다. 블랙베리는 그렇게 많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따서 먹었던 기억은 있다. 우리 집에 컨서버토리에는 12명이 앉을 수 있는 비교적 큰 식탁이 있었기에 아프리카에서 온 한국인 선교사들을 나흘간 접대해서 보낸 적도 있다. 뭐 그리 복잡할 것도 없는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를 조금 격식 있게 차려 냈더니 손님들의 칭찬이 대단했다. 물론 과분한 칭찬이었다. 나의 음식 솜씨 보다 예쁜 영국의 도자기들이 식탁을 빛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바라보며 손님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이런 것들이 다 때 맞추어 정원을 잘 돌본 대가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선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남편과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실내에 화분 몇 개 두고 사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때와 비교하면 편하게는 살고 있지만 계절 맞추어 피는 꽃들과 시원한 나무그늘이 그립기만 하다. 언제 또 우리 살아 있는 동안 그런 집에서 살아 볼 기회가 있기나 할까? 하지만 그때는 힘들었어도 그렇게 정원을 돌보며 사는 것이 좋았고 지금은 아파트에 딸린 정원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행히 우리에겐 우리 집 후원 같은 역할을 하는 동네 뒷산이 있어 오히려 자연환경은 여기가 더 만족스러울 때가 많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자연이라고나 할까.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약수터도 있는 우리 마을이 영국에서 힘들여 가꾼 정원 못지않게 내게는 귀하다. 영국에서 처럼 여우들은 볼 수 없지만 산돼지와 고라니 그리고 청설모가 서식하는 산에 소나무들이 많아 북쪽으로 난 우리 집 서재의 창문을 열면 솔향이 바람을 타고 솔솔 들어오니 더 바랄 게 없다. 이제 남편과 산둘레 길을 산책할 시간이다. 영국에 대한 상념은 여기에서 그만, 해가 기울기 전에 어서 나가봐야겠다.

- 다음 회에서 계속